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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연루된 기억, 연루될 수 없는 기억 본문

여성주의역사학/여성주의대안기념

1987, 연루된 기억, 연루될 수 없는 기억

alice11 2018. 1. 22. 23:17

1987을 보았다.


너무 많은 평에 노출된 후 보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화가 나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무덤덤했다.


이 무덤덤함은 나 자신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라, 무덤덤함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았다.


이미 다아는 이야기여서일까?


<택시운전사>도 <아이캔스피크>도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무덤덤하지는 않았다.


영화의 만듦새나 젠더 이슈라던가, 기억, 기념 등의 여러 문제가 영화를 보며 머리속을 어지럽힐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보는 내내 마음은 그저 무덤덤했다. 


이 무덤덤함은 아마 개인적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 3학년이었던 1987년,

정문, 굴다리, 최류탄과 그 모든 게 너무나


익숙하달까. 아니 이 이야기들이 너무나 개인적인 삶의 한 고비와 연결이 되어서


인 것 같다.


많은 이들의 감상평을 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나 그 이전/이후 586 등으로 불리는 세대는 <1987>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그 시절에 대한 격렬한 감정을 맛본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유 또한 개인적이다. 


그 시절들을, 아마도 이제는 무덤덤하게 기억하게 된 것 같다.


영화를 보며, 어떤 얼굴들이 떠올랐고,

개인적으로 인생의 긴 시간을 함께 한 친밀성의 관계 속에 있던 얼굴보다는


그, 그리고 그들과 인연이 끊어진 후 오래 만나지 못했던 후배가 계속 생각났다.


신기한 일이지만, 인생의 어떤 시절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신기하게도.


연희가, 한열이의 죽음을 계기로 버스 위에 올라


<호헌 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이후, 그 시절에서 조금 더 지난 이후쯤부터인 것도 같다.


아주 오래, 격렬한 부대낌 없이 떠올리기 어려웠던 시간이고

그리고 더 오래는, 거의 기억하지 않았던 시간, 혹은 장소들이었다.


<1987>을 보니, 이제는 무덤덤해진 모양이라는 그런 자기 확인이랄까.


좀 그런 시간이었다. 


영화는 좀더 평범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종철이, 한열이도 그렇지만, 왠지 연희도 <죽은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못하다거나, 여성을 정치적 주체로 간주하지 않거나 이런 지점보다,


좀 개인적인 감상일 수도 있겠지만,


종철이도, 한열이도, 연희도


사실 좀더 평범하고, 살아있는 인물로 그릴 수도 충분히 있었을텐데.


<1987>은 그들을 다시 살려내기보다, 추모하는 데 바친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에서 모두 살아 날뛰는 데


사실 셋은 이상할 정도로 '기억'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모두가 타협하거나, 제자리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또는 그렇게 그렇게 삶의 굴곡 속에서 변하고

전향하고 옛날 이야기나 하며 다 살아가는데


그저 기억 속에서, 그때 그 모습으로 그냥 있는 사람들. 


인형같아서 비현실적이라는 평이 많았던 


연희의 모습은, 무언가


똘망똘망한 그 얼굴이


영원히 검은 한복에 똘망하고 큰 눈망울을 잊을 수 없었던

김귀정을 닮은 것도 같았다. 


연대에서 이한열 기념관을 만든다는 뉴스를 보았다.


언젠가 이한열 기념관에 가보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마음이 아쉽기도 놓이기도 했었다.


그 때 만나지는 못했지만, 오늘 영화를 보며

만나지 못했던 후배 생각을 했다.


밤길을 걸어오며 혼자 말을 건네 보았다. 



"오래, 고생했네.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