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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대중적인 문법으로 쓴다" 본문
어깨 통증이 심해서, 페북에 긴 글을 쓰는 일을 잠시 멈추었다.
짬을 내어 <염력>을 보았다. <공동정범>을 보기 위한 준비로. 순서가 바뀌면 <공동정범>이 기준점이 될 것 같아서
<부산행>을 보고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부정하거나 배신하는 것은 단지 대중성 때문인가?"라는 의문을 오래 품었다.
<부산행>은 <서울역>의 작품 세계에 대한 부정 혹은 배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서울역>에서 자신이 비판하던 세계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면서, 기어코 자신이 부정해버린 '과거의 작품세계'마저 포기하지 않고 끌어들이려는 것일까?
대중적 영화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부산행>의 대중적 성공은 이런 행보가 틀리지 않았다는 응답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 고민을 하고 싶었으나, 굳이 고민할 필요가 있는 의문일까, 내버려두고 있었달까.
<염력>을 보니, 한번은 좀더 고민해보고 싶어졌다.
<염력>과 <공동정범>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다.
나는 오히려, 연상호 감독 자신의 행보와 변화에 대해 질문을 더 많이 하고 싶어졌다.
이른바 '대중적 문법'은 쉽게 만들거나, 자연스럽게 획득할 수 있는 어떤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대중적 문법'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실은 문제적이기도 하다.
<서울역>, <부산행>, <염력>에 이르는 텍스트의 변화는 연상호 감독이 혹은 한국 영화 문법에서 '대중적 문법'을 무엇이라고 설정하고, 이에 반해 대중적이지 않은 문법, 버려야 할, 부정해야 할 문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해 버려야 할, 부정해야 할 문법이 <젠더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나는 캐릭터와 관계 설정>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가부장적 지배에 대한 비판>을 보이지 않게 만들거나, 다루지 않도록 하는 집단적 금기가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
<서울역>, <부산행>, <염력>에 모두 등장하는 심은경의 캐릭터 변화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서울역>에서 혜선은 '가정'에 속하지 않는 여성이고, '거리'는 <집>과 <거리>라는 젠더화된 공간 구획에서 배제되었으나, 포획되지 않는 낭시가 말하는 <자리>에 가깝다.
<서울역>에서 '홈리스'를 좀비로 만드는 폭력의 원천으로 작동하는 것은 <억압적 국가 기구> 뿐 아니라, 홈-리스나 <거리의 여성>을 <가족-집>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적 공간 구획에서 추방하려는 <가부장적 지배>이기도 하다.
<서울역>의 바리케이트 투쟁은 <집과 거리>,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구획하고 통제하는 가부장적 지배와 국가 폭력과 겹겹으로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즉 <서울역>에서 <국가 폭력>과 <가부장적 지배>는 불균질하지만, 이어져있다.
유사 아버지-'포주'-폭력의 대리인이 하나의 신체에 이질적으로 현현하는 이유다.
하여 <거리의 여성>, 혜선과 유사-아비-포주 사이의 대립과 갈등과 적대는 화해 불가능하다.
<부산행>과 <염력>이 보여주는 바, 대중적 문법을 얻는다는 것은
1. <젠더 스테레오 타입>에 충실한 캐릭터를 설정하기: 딸을 구하려는 헌신적 아비, 오염의 원천인 여성 신체(부산행에서 심은경), 슈퍼 가부장과 딸로 구축된 서사를 만드는 일.
2. 국가 폭력과 가부장적 지배를 매끈하게 분리하여, 국가 폭력에서 <가부장의 지배>를 구출하는 서사로 변신하기.
가부장의 지배가 구출되고, 되돌아오기 위해, 아버지-딸 사이의 대립과 갈등과 적대의 화해불가능한 세계는 사라지고, 매끈하게 봉합된다.
여성 캐릭터가 젠더 스테레오 타입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
<서울역>의 혜선과 유사한 스타일로 등장하는 <염력>의 홍전무는 가부장을 복원하기 위해 여성이 악과 폭력의 대리인 자리로 할당되는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하는 전형적 사례.
3. 가정-거리라는 가부장적 공간 구획에 포섭되지 않는 새로운 자리를 여는 영화적 시도는 사라지고, 폭력과 위험이 사라진, 본래의 공간을 다시 구축하는 일이 '해피엔딩'으로 설정됨.
대중성의 문법으로 쓰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쓰기>라고들 하지만
실상 대중성의 문법으로 쓰는 일은, 기존의 익숙한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서도 안되고
공간, 주체 위치, 관계에 대한 그 모든 '익숙한' 서사, 즉 젠더 정치가 매개되지 않은 것처럼
젠더 중립적 외양으로 작성된 국가-시민-가족의 서사를 반복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참고자료
박지훈, <용산 참사를 향한 염력 혹은 기억력>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1245
김경욱, <염력은 왜 실패했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5576&utm_source=daum&utm_medium=search
듀나, <염력, 아버지를 위한,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영화>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8013123177249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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