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미스트롯
- 류장하 감독
- 안으며 업힌 #이정임 #곳간
- 젠더비평
- 2020 총선
- 해피엔딩
- 플렉스
- 송가인
- 정만영 #사운드스케이프#안으며업힌#이정임#김비#박솔뫼#곳간
- 입신출세주의
- 정도적 불평등
- 드라마 연인#여성 수난사 이야기#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초국가적 문화사
- 미스터트롯
- 뷰티플 마인드
- 장애학
- 노인돌봄
- 대중정치
- 조국
- Today
- Total
alicewonderland
202002사례연구:글순서1 본문
이때 있었던 헤이트스피치와 여기 대응하려고 작성한 문서를 올려둠.
문서 순서 1. (중간에 원글 캡처를 해서 게시했는데 여기는 생략함)
‘트랜스젠더 친구’를 학살해도 좋다는 ‘친구’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는 이유
***대표가 페북에 올린 글과 그리고 이후에 단톡에 게시한 입장을 보면 본인은 앞으로도 이러한 차별주의를 고수하고 ‘토론’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보 쓰레기로 떠돌아다니는 허황된 이야기를 부산****연합 대표이고 ** 소장이기도 한 사람에게 실명으로 듣는다는 게 어이가 없습니다. *** 소장을 오래 보아온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토론이나 설득, 대화로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오랜 고민 끝에 저도 판단을 내립니다. ***씨는 본인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고 강변하겠으나, 한마디로 전혀 가치가 없는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반지성주의 담론의 전형일 뿐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오래 싸워온 경험으로 ‘토론’ 같은 건 본인들의 폭력적인 반지성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전략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씨 글에서 다시 확인하는 건 참담합니다.
***씨가 부산에 깊은 연고를 갖고 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에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씨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역시 그런 사람이지만, 어쩌면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기에 생긴 문제라고도 보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아마 이 사태를 ‘안타깝게’ 여기며 논쟁은 그만하면 좋겠다, 싸우지 말지, 왜 그런 공격을 하지 이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씨가 자신이 올린 글에 대해 토론을 해보자고도 했으니, 올린 글이 왜 헤이트스피치인지 분석하는 글을 올립니다. 저도 혐오세력에 맞서 오래 싸워왔으나 대처하는 방법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페북이나 활동을 보면서 ‘함께 하는 사람’을 보고 신뢰를 판단하기에, 차별주의자와는 함께 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대응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상대방이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변화하도록 함께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씨에 대해 그런 긴 기다림의 시간, 촉구의 시간을 가져왔다고 생각하고 깊은 절망의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1. **** 인권 센터 ** 활동 경력을 내세워서 담론의 권위를 부여하고 글을 시작함. 이 글은 개인의 글이 아닙니다. **대표로서 권위를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자신의 경험을 왜곡해서 트랜스젠더와 게이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올린 이미지 첫 단락에서 ***은 ** 15년간 경험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서 논합니다. 헌데 여기서 말하는 “트랜스젠더와 게이”가 ‘쉼터’에 들어가야 했던 사례란, 트랜스젠더와 게이가 성폭력 피해자였던 사례입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자신이 지원을 했던 사람을 트랜스젠더와 게이라고 지칭하는 것 자체가 차별입니다. 앞서 *** 소장이 글을 올리면서 자신의 “트랜스 젠더 친구”가 본인에게 “**씨가 터프여도 나에게는 **씨일 뿐이다.”라고 한 논의를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올리셨던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 소장은 그 ‘친구’의 말을 정말 이해를 못하는 거지요. ***에게 그 친구는 친구긴 해도 ‘트랜스젠더’일 뿐이니까요. 누군가를 하나의 존재, 고유한 목소리와 숨결과 삶과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트랜스 젠더, 게이, 레즈, 여성으로 나누고, 분류해서 라벨링하고 환원하고 평가하는 게 이른바 학살의 예고편이라는 헤이트스피치입니다.
2.여기서 더 나아가 1 사진에서는 피해자였던 게이와 트랜스 젠더들이 피해자 쉼터에 들어가는 문제를 사례로 들어놓고.
사진 2에서는 매우 비약적으로 여성 인권이나 여성 공간이 성기를 지닌 존재에게 침해되는 일에 게이와 트랜스젠더 단체가 관심이 없다. 그리고 아무 근거도 없이 성노동을 주장하는 게(성노동을 주장한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주로 게이와 트랜스젠더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방식은 신종 코로나가 중국인 때문이니 중국인 모두를 한국이라는 공간에 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1의 논거 즉 자신의 15년간 살림 경험에서 피해자였던 트랜스젠더와 게이들이 피해자 쉼터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전도해서 2, 즉 트랜스젠더와 게이들이 여성 공간을 침입하는 폭력의 가해자라고 정당화합니다. 즉 1의 담론 권력을 왜곡해서 트랜스젠더와 게이를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침입자로 규정하는 것이 마치 객관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왜곡해서 한마디로 가짜뉴스와 마찬가지 논의를 합니다.
또 사진 2에서 트랜스젠더가 여성에게 폭력적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성착취 피해 여성이 그린 선인장 그림이 남성 성기를 상징하고 결국 남성 성기가 폭력적이라며 여성 공간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멧돼지에 의한 공격을 경험한 사람은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멧돼지를 학살하는 게 논리적으로 정당한가요? 자동차 사고를 경험하면 역시 자동차만 봐도 두려워집니다. 그럼 자동차도 모두 없애고 그러면 모든 사고와 폭력이 사라지나요? 이게 논리적으로 어떤 근거도 되지 않는데, 이걸 단지 자신이 **센터 15년을 했다는 이유로 마치 절대적이고 현실적인 근거인 것처럼 권위를 부여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가짜 뉴스, 정확하게는 헤이트스피치라고 합니다.
3.
게다가, 성착취 피해여성이 남성 성기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고 그걸 **센터 소장으로 내가 직접 확인했다는 다만 저 담론 권위(왜곡되고 과장되고 근거없는)를 바탕으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것을 여성혐오나 폭력적인 남성성과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었다고 논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입니다. *** 소장은 단톡방에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지 말라고 하시던데, 무슨 근거로 트랜스젠더 정체화에 대해 이런 근거 없는 폭력적 일반화를 단지 **에서 15년간 일한 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특히 단톡에서 *** 소장이 자신의 ‘트랜스 젠더 친구, 게이 친구, 작가님’을 거명하는 건 너무나 슬프고 비통한 심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친구라고 부르며 폭력을 정당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트랜스 젠더 인권이 커지면 여성 인권이 위협받는다?,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역차별론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더 길게 쓸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부산**단체** 대표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인가요?
“젠더는 여성 억압의 기제가 되는 것이지 수행하는 행위 주체로 전혀 인정할 수 없다.” 쉴라 제프리스를 아무리 열렬히 동경한다고 해도, 이런 발언은 젠더는 남자와 여자가 아닌 제 3의 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라서 성소수자를 인정하기 위한 전략이니 해롭고 박멸해야한다는 극우파의 논리와 똑같은 논의입니다.
5. 성소수자를 사랑하지만 차별에 찬성합니다. 나는 유태인을 증오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아리안 인종의 위대한 혈통을 오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이니치를 미워하지 않지만, 그들의 ‘특권’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 소장은 본인은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찬성하지만 성별정체성을 차별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하고 단톡에서도 법제화에 반대한다고 거듭 주장하셨습니다. 이런 논의는 새로운 것도 터프의 고유물로 아니고, 바로 증오정치가 오래 반복해온 파시즘 담론이지요. 나치스도 재특회도 그들이 ‘유태인 친구’와 ‘자이니치 친구’를 증오한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만 유태인 친구와 자이니치 친구가 위기에 처한 아리안 집단과 일본을 현격하게 위험에 처하도록 만든다는 ‘급박하고도 절실한 심경’으로 유태인 친구와 자이니치 친구를 박멸하고 학살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실행했습니다.
***의 글은 그런 점에서 나치스와 재특회의 발언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 소장이 페북에 올린 글의 입장을 변경할 수 없다고 한다면 저는 이후 *** 소장, 그리고 *** 소장과 연계된 조직과 단체와는 함께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No!", 차별을 정당화하는 그 면전에 ”안돼!“, ”그만“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안돼!”
이런 일이 다 무의미하다는 게 더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다시 한번이라는 심정으로 긴 글을 남겨봅니다.
'혐오발화아카이브 > 혐오발화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02글순서3 (0) | 2020.02.11 |
---|---|
2020사례연구글순서2 (0) | 2020.02.11 |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혹은 동등한 접근권을 위하여(2020사례연구 글순서 마지막) (0) | 2020.02.09 |
인서울 그리고 (0) | 2020.01.06 |
내이션 스케일로 중계되는 지역몰락 (0) | 2019.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