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alicewonderland

2024년 12월 8일, 부산 서면의 기록 본문

대안적 지방담론과 정착민 식민주의

2024년 12월 8일, 부산 서면의 기록

alice11 2024. 12. 8. 14:28
<학살의 현재성, 항쟁의 현재성: 패턴도 반복도 없다, 다만 차이화를 보지 못할 뿐>
 
 
24.12.08
 
 
1. 2018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한창일 즈음, 서울 시위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즐겁게' 시위가 이어지는 걸 보는 부산 페미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오로지 당시 캠페미(캠퍼스 페미 네트워크) 구성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매주 열리던 집회는, 결국 많은 부분 '신변의 위협'이 헌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달해서, 마무리했다.
 
 
당시 서면 집회 마지막 날의 '공포심'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실 그 후로 서면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소수인 우리를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물건을 던지고 위협하는, 사람들로 온통 둘러싸여, 오롯이 신변의 위협을 받아내야 했다.
 
이른바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는, '민주화의 성지'로도 불리는 서면에서 페미니스트 집회는 린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2. 지역 퀴어 퍼레이드로 일찍 시작한 부산 퀴퍼는 중단되었다. 내부의 여러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변곡점은 역시 심각한 린치 위협 때문이고, 주최 측이 반동성애 세력에 의한 행정력, 경찰력, 물리적 린치를 모두 오롯이 받아내야 했고, 역시 한계에 도달했다.
 
 
해운대에서 열렸던 퀴퍼에, 공포스럽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반동성애 세력들이, 깔끔한 정장 차림의 젊은 청년들을 앞세워 위협을 가했던 날들을 잊지 못한다.
 
 
3.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당시 강의를 하면서 이런 우스개도 한 적이 있다.
 
 
"내가 그래도 나름 페미니스트인데, 부산에 온 지 십 년이 넘는 세월 많은 일을 해왔는데, 학생들도 부산도 크게 변하지 않더니만,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변하는 거냐? 내가 십 년간 해온 일은 뭐냐? 배신감 느낀다, 너희들!!!"
 
그렇다, 서울에서는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신변 위협과 린치의 공포에 둘러싸여 있는 게 부산이긴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계속 변화하고, 어느 날 갑자기 변화하기도 했다.
 
 
학교 선배 교수들이 나한테 "우리 여학생들 물들이지 말라"고 경고하시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학생들은 저한테 물들지 않고, 저도 모르는 어디서 물들어서, '휘까닥' 변해버렸어요.
 
이게 나의 페미니스트나 교사로서 무능력이기도 하겠으나, 오히려 나는 그게 이른바 젠더사가 말하는 차이화로서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어펙트 이론이 말하는 우발성과 마주침의 사건성이라고도 생각한다.
 
 
어펙트 이론을 약한 이론이라고 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이 이론이 총체적 설명력이 없다고 하겠으나, 실은 지금까지 총체성을 자임하면서,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다 망했다!", "이건 패턴이야"라며 예측과 '전망'을 자임해 온 방식에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이론 내적 비판이기도 하다.
 
 
오늘 여기에 벌어지는 일은 반복도 패턴도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기 때문에 반복이나 패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광장에 나온 이들이 '결국', '결과적으로' 무의미하거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건, 그러니까 역시 광장에 나온 무수한 사람들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밖에 보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무수한 열망, 동기, 무의미를 알면서도, 몸을 움직여 나아가는 그 하나의 신체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자신도, 또 '대단한 학자들'도 사실 아직 모른다.
 
 
어제 서면 집회에 나왔던 무수한 젊은 세대 여성들은 2018년에는 대부분 초등학생이거나 유아였겠는데. 그들을 광장으로 이끈 요인을 손쉽게 재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주변의 사람들의 마주침과 정동적 흐름의 변화를 크게 느꼈다.(물론 전철에서 또 다른 마주침을 해야 했으나.)
 
 
4. "아주라"(2008)에서 '아이돌 응원봉"의 등장으로의 천지개벽: 서면 집회의 역사성과 단절적 변화들
 
 
부산에 대한 실감의 지층이 깊지 않아서, 서면 촛불 집회의 역사를 좀 찾아보았다. 이전과 참여 인원이나 방식 등을 조금 살펴보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반대 집회 때는 서면 촛불 집회가, 사직 구장 야구장 문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는 기사도 흥미롭다. 당시 촛불 집회를 이끈 건 "아주라"를 외치는 남성들이었다. 집회 참가자는 집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로 집회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고 인터뷰를 했다.
 
 
지난 이십 여 년의 서면 집회의 역사에 비춰볼 때 2024년 12월 7일 집회는 천지개벽 같은 것이기도 하다. 역사상 이처럼 많은 여성, 소수자, 비성인 청소년이 주축이 된 집회는 없었다.
 
 
5. 부산역 광장 대 서면이라는 '평행 구도'의 붕괴: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라는 박근혜 사수대의 조기 대선 전략들의 추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부산역 광장의 태극기 집회와 서면 민주화 운동이라는 팽팽한 대립이 사라졌다.
 
일단 기사로는 최근 부산역 광장에서 탄핵 찬성 집회는 없었다.
 
2021년까지도 파쇼 종교 단체가 부산역에서 문재인 탄핵 집회를 열었다.
 
부산역에 상주하던 태극기 집회에 대해 여러 민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지금 박근혜 탄핵 당시의 반복이라고 하는 여러 논의에 비추어 비교를 조금 해보자면
 
 
2016년 박근혜 탄핵에서 2017년 대선까지 "부산역 광장"은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당시 서면에서는 탄핵 요청을 외치는 민주화 시위가, 부산역 광장에서는 박근혜 탄핵 결사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조기 대선 당시 대선 후보로 나선 홍준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문재인을 "PK 패륜아"라고 비난하면서
 
이른바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를 선거 구호로 내걸고 대선 선거 운동을 부산역 광장과 서울역 광장의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이어갔다.
 
 
최근의 움직임은 분명 이런 과거의 패턴을 염두에 둔 것일 텐데, 탄핵 국면에서 일단 부산역 태극기 집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차이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거나, 도구화될 지도 살펴볼 일이다.
 
 
 
 
 
 
 
 
 
 
 
 
 
 
 
 
 
 
 
 
 
 
 
 
 
 
 
 
 
 
 
 
 
 
<학살의 현재성, 항쟁의 현재성: 패턴도 반복도 없다, 다만 차이화를 보지 못할 뿐>
 
24.12.08
 
 
1. 2018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한창일 즈음, 서울 시위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즐겁게' 시위가 이어지는 걸 보는 부산 페미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오로지 당시 캠페미(캠퍼스 페미 네트워크) 구성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매주 열리던 집회는, 결국 많은 부분 '신변의 위협'이 헌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달해서, 마무리했다.
당시 서면 집회 마지막 날의 '공포심'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실 그후로 서면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 소수인 우리를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물건을 던지고 위협하는, 사람들로 온통 둘러싸여, 오롯이 신변의 위협을 받아내야 했다.
이른바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는, '민주화의 성지'로도 불리는 서면에서 페미니스트 집회는 린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2. 지역 퀴어 퍼레이드로 일찍 시작한 부산 퀴퍼는 중단되었다. 내부의 여러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변곡점은 역시 심각한 린치 위협 때문이고, 주최측이 반동성애 세력에 의한 행정력, 경찰력, 물리적 린치를 모두 오롯이 받아내야 했고, 역시 한계에 도달했다.
해운대에서 열렸던 퀴퍼에, 공포스럽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반동성애 세력들이, 깔끔한 정장 차림의 젊은 청년들을 앞세워 위협을 가했던 날들을 잊지 못한다.
 
 
3.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당시 강의를 하면서 이런 우스개도 한 적이 있다.
"내가 그래도 나름 페미니스트인데, 부산에 온지 십년이 넘는 세월 많은 일을 해왔는데, 학생들도 부산도 크게 변하지 않더니만, 어떻게 이렇게 하루 아침에 변하는 거냐? 내가 십년간 해온 일은 뭐냐? 배신감 느낀다, 너네들!!!"
그렇다, 서울에서는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신변 위협과 린치의 공포에 둘러싸여 있는 게 부산이긴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계속 변화하고, 어느날 갑자기 변화하기도 했다.
학교 선배 교수들이 나한테 "우리 여학생들 물들이지 말라"고 경고하시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학생들은 저한테 물들지 않게, 저도 모르는 어디서 물들어서, 휘까닥 변해버렸어요.
이게 나의 페미니스트나 교사로서 무능력이기도 하겠으나, 오히려 나는 그게 이른바 젠더사가 말하는 차이화로서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어펙트 이론이 말하는 우발성과 마주침의 사건성이라고도 생각한다.
어펙트 이론을 약한 이론이라고 하는 건, 누군가에게는 이 이론이 총체적 설명력이 없다고 하겠으나, 실은 지금까지 총체성을 자임하면서,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다 망했다!", "이건 패턴이야"라며 예측과 '전망'을 자임해온 방식의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이론 내적 비판이기도 하다.
오늘 여기에 벌어지는 일은 반복도 패턴도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기 때문에 반복이나 패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광장에 나온 이들이 '결국', '결과적으로' 무의미하거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건, 그러니까 역시 광장에 나온 무수한 사람들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밖에 보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무수한 열망, 동기, 무의미를 알면서도, 몸을 움직여 나아가는 그 하나의 신체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자신도, 또 '대단한 학자들'도 사실 아직 모른다.
어제 서면 집회에 나왔던 무수한 젊은 세대 여성들은 2018년에는 대부분 초등학생이거나 유아였겠는데. 그들을 광장으로 이끈 요인을 손쉽게 재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주변의 사람들의 마주침과 정동적 흐름의 변화를 크게 느꼈다.....(물론 전철에서 또다른 마주침을 해야했으나.)
 
 
4. "아주라"(2008)에서 '아이돌 응원봉"의 등장으로의 천지개벽: 서면 집회의 역사성과 단절적 변화들
부산에 대한 실감의 지층이 깊지 않아서, 서면역 집회의 역사를 좀 찾아보았다. 이전과 참여 인원이나 방식 등을 조금 살펴보고 있다.
20008년 미국산 소고기 반대 집회 때는 서면역 집회가, 사직구장 야구장 문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는 기사도 흥미롭다. 당시 탄핵 집회를 이끈 건 "아주라"를 외치는 남성들이었다. 집회 참가자는 집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로 집회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고 인터뷰를 했다.
지난 10년의 서면 집회의 역사에 비춰볼 때 2024년 12월 7일 집회는 천지개벽 같은 것이기도 하다. 역사상 이처럼 많은 여성, 소수자, 비성인 청소년이 주축이 된 집회는 없었다.
 

 

5. 부산역 광장 대 서면이라는 '평행 구도'의 붕괴: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라는 박근혜 사수대의 조기 대선 전략들의 추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부산역 광장의 태극기 집회와 서면 민주화 운동이라는 팽팽한 대립이 사라졌다.
일단 기사로는 최근 부산역 광장에서 탄핵 찬성 집회는 없었다.
2021년까지도 파쇼 종교 단체가 부산역에서 문재인 탄핵 집회를 열었다.
부산역에 상주하던 태극기 집회에 대해 여러 민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지금 박근혜 탄핵 당시의 반복이라고 하는 여러 논의에 비추어 비교를 조금 해보자면
2016년 박근혜 탄핵에서 2017년 대선까지 "부산역 광장"은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당시 서면에서는 탄핵 요청을 외치는 민주화 시위가, 부산역 광장에서는 박근혜 탄핵 결사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조기 대선 당시 대선 후보로 나선 홍준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문재인을 "PK 패륜아"라고 비난하면서 이른바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를 선거 구호로 내걸고 대선 선거 운동을 부산역 광장과 서울역 광장의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이어갔다.
최근의 움직임은 분명 이런 과거의 패턴을 염두에 둔 것일텐데, 탄핵 국면에서 일단 부산역 태극기 집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차이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거나, 도구화될 지도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