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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 일기/여기가 아니었더라면

가보지 않은 길, 혹은 남방 연구자에 대한 상상

alice11 2021. 2. 11. 16:29

서울 공립고등학교 프랑스어 독일어 교사분이 이제 몇 분 안계시고 다 퇴직하셔서 프랑스어랑 독일어 수업이 이제 마지막이라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그 이전에 이미 대학에서 프랑스어문학, 독일어문학과가 '구조조정'된 것도 이미 십 년이 넘은 것 같다.

그때 불문과 동창 친구가 '불문과가 이렇게 될 줄 진짜 몰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에게 "넌 그 옛날에 혹시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야?"라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선견지명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모든 게 이렇게 강제적 퇴출로 이뤄지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고. 당시 대학 불문과 독문과 구조조정은 또 고등학교에서 제 2외국어 교육 방식이 이미 일본어 중국어로 바뀌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를 독어로 했는데 불문과를 간 건 그때 '야망'이 기본 5개 국어에 능통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는,,,,(부끄)

 

진로는 여러 번 바뀌었으나, 언어를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고, 더 다른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는 것 같다.

불어를 하나도 모르고 불문과를 갔으니 불문과 생활이 좋았을 리 없으나, 대학원 진학도 고민하면서 나름 열공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나는 불어를 교육하는 방식이 여러 면에서 나랑 안 맞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선생님이 정말 섬세하고도 꽤나 당찬 여자 분이셔서 나름 롤 모델이기도 했고, 내가 불문과 간다고 할 때도 좋은 생각이라고 격려해주셨는데, 그래서인지 외국어 교육에 대한 뭔가 이상적인 생각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스페인어에 조금 관심을 두게 되면서 프랑스어 공부가 스페인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고, 언어의 인접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유럽에서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인접 지역 언어를 교육 초기 단계에서부터 같이 할 수 있고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한자 교육, 중국어, 일본어, 타이완, 홍콩, 말레이어, 베트남어 등 인접 지역 언어를 초기 교육 단계에서 하는 게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영어나 프랑스어, 독어를 배워서 텍스트 읽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특히 프랑스어는 번역서 볼 때마다, 프랑스어 몰랐다면, 도통 이해 안되는 번역을 붙잡고 씨름했을 걸 생각하면 진짜 억울했을 것 같다 생각하곤 한다. 물론 번역은 너무 어렵고, 이유는 잘 모르지만, 프랑스어 번역은 하여간 한국에서 뭔가 아직도 어렵다.

 

일본어로 번역한 프랑스어 텍스트가 잘 읽히는 건 내 생각에는 일본어는 일찍부터 거의 '번안'에 가깝게 일본어로 잘 읽히는 번역을 하는 방식이 자리 잡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어색한 번역투 문장이 오히려 번역의 정치성에 걸맞다는 논의도 있지만)

 

이전에 번역할 때, 영어 번역 전공자분들이 한국어로 잘 읽히게 번역하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강경하게 적개심을 보이셔서, 포기한 적이 있는데.....이건 번역사랄까, 번역 언어들 문제에 대해서 꽤 길고 긴 논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근데 영어보다 프랑스어 쪽은 그게 더 강해서, 한국어로 이해되는 것 자체는 전제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리고 이게 언어 사이의 위계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관적인 감상도 해보았다. (번역 전문가 아님^^;;)

 

(휴일에 왜 이리 길게 글쓰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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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누구나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는 부산에 오게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동남아나 호주 동남아연구 센터에 가서 '남방' 연구를 계속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럴 계획이었으니까.

 

일본의 남방공영권-조선의 남방 담론에서 시작해서 '남방' 인식과 인종주의 혹은 제국의 판타지를 이어서 연구할 계획이었는데, 부산에 오면서 풍기문란 연구로 더 집중하게 되었고남방에 대해서는 몇번 기회가 있었는데 이어지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말레이어와 베트남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도통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동남아시아 지역 언어를 조금 더 일찍 배울 수 있었다면 더 다른 시각과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해보는,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을 겸한. 외국어 단상.

 

그런데 그런 의미로, 이제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초기 교육 단계에서 배울 수 없다면 지금 교육받는 사람들은 언젠가 나처럼, 조금 일찍 불어나 독어를 배웠다면 다른 걸 할 수 있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선택지를 세밀하고 다양하게 하는 교육은 정말 안되는 건가 ㅠㅠ

 

(조중동 기사를 인용하려니 뭔가 배신행위 같음....ㅎㅎ)

 

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0210/105364473/1?fbclid=IwAR1P-w6m99YJtlyNJYnO_2oyCPJw72k8yXfcdG079i9f5Nv0hAAdNX0Lt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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