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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 일기/여기가 아니었더라면

먼 곳, 모르는 말들

alice11 2021. 2. 1. 18:23

공부나 업무를 마치고 잠 들기 전

 

시간이 있을 때 몇편 씩 외국 드라마를 본다.

 

요즘은 호주, 아이슬란드, 폴란드, 벨기에를 오간다. 처음에는 배우다 만 스페인어를 공부하려고 스페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마드리드 모던걸>을 골라서 본 게 계기였기도. 뭔가 나중에 수업용으로 한국판 모던걸과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드라마가 좀 산으로 가고, 주인공이 갑부랑 결혼하고 뭐 등등의 이유로 끝까지 보지 못했다. 이어서 <종이의 집>을  1시즌과 2시즌 앞정도 보았는데, 전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하고 벨라 차오Bella Ciao 노래 덕분에 혁명적 낭만주의 붐을 일으켰다. 한국에도 리메이크 된다고도 한다. 역시 2시즌 2편 정도 보고 그만둠. 대체로 여력이 안되고 좀 지루해져서 드라마를 앞에 좀 보다가 못보게되는 듯. 퀸스 갬빗도 <여성 주연 영화>로 높이 평가받고 있어서 찾아보았는데, 여자 주인공을 카메라가 너무 관음증적으로 들여다봐서 좀 불편하고, <도발적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는 얼굴 크로즈업하는 게 많이 식상했다. 나름 인기 있는 이유는 있겠지만, 하여간 나는 여기까지였고. 

 

드라마 보기는 철저하게 취미로 하기로 생각해서, 가능한 요즘 핫한 드라마보다, 멀고 먼, 알고리즘 상에서 한참 떨어진 드라마를 찾아가 본다. 

 

한동안 아이슬란드 영화를 보았는데, 과학수사관조차 없어서 근처 덴마크에서 요청해서 지원받아야 하고, 스스로 '덴마크가 버린 식민지'라고 인식하는 자조적이고,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없는 듯한 그 고여있는 시간성이

 

뭔가 다른 데, 여기랑도 겹쳐진다. 알지 못하는 말을 듣는 게, 비현실적으로 눈에 덮힌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과 함께 알 수 없는 즐거움이 되는 모양이다. 

 

폴란드 드라마는 러시아어인지 알고 한참보다가 폴란드라는 걸 깨달았고

90년대를 빙하기처럼 느끼는 요즘 세대는 모두 해커처럼 컴퓨터 광인데 기성세대는 팩스도 못쓰고 스마트폰도 못쓰는 사람들로 등장하는 게 재미있었다. EU 시대, 런던과 폴란드의 소도시는 제국과 식민지의 EU 버전 같고. 

 

벨기에 드라마는 2020년이 아닌 시간이 1950년 쯤 멈춰있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 그 드라마에서 빌 프랑슈는 로마 제국 시대에 멈춰있었다. 

 

프랑스 영화나 프랑스 드라마의 프랑스어는 젠체하고 짜증스러웠는데

벨기에 드라마로 듣는 프랑스어는 (처음으로) 아름다웠다. 나도 감상적 반제국주의자이니까^^

 

그런데 이러저러 보면서, 여기저기 끼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나라, 지역의 모양새는 어떤 점에서 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근데 어쩜 그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추리서사의 시간성이 다 그 모양이라서 그런듯^^

 

헤이트스피치나 차별선동 증오정치 연구하는 건, 정신건강에 정말 좋지 않다.

 

하루 종일 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