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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고자 하는, 혹은 에일리언 어펙트alien affect 본문

몰운대 일기/여기가 아니었더라면

벗어나고자 하는, 혹은 에일리언 어펙트alien affect

alice11 2021. 3. 1. 14:05

 

* 사라 아메드는 소수자의 부대낌은 이른바 일반적인 감정 체계 혹은 이름이 부여된 정동 체계에도 들어갈 수 없고, 또 소수자의 질 다른 정동적 부대낌은 매번 이미 이름이 부여된 정동과 감정으로 환수되어 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소수자의 다름 이름은 정동 소외자, 혹은 정동 이방인이다.

 

*'위안부 문제'로 탐라가 들끓던 당시 내 글에 대해 '원한이 담겨있다'며 '이제는 원한 없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논평을 본 적이 있다. 논평의 함의를 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담론 투쟁과 존재를 건 투쟁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고, 알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긴 역사를 '원한'이라는 손쉬운 이름으로 환원하고 또 쉽게 '세대론'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게 '운동'의 이름으로 쉽게 이야기되는 게 씁쓸했다.

 

*부산 관문 공항, 혹은 가덕도 신공항과 관련하여 무수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나 또한 그 모든 논쟁의 핵심을 다 잘 알지 못한다. 그간 진행된 논쟁을 신문 기사 형태로만 검색해보아도, 논쟁 어디에도 <그럼 국토균형 발전, 혹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지 못했다.

 

*"이렇게 논쟁이 극화되기 전에 페북에 부산에는 온통 관문 공항 관련한 논의로 가득한데, 이른바 중앙 미디어 어디서도 관련 보도를 볼 수 없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요지의 질문을 올린 적이 있다. 보궐선거와 다음 선거를 위해 정치권 모두 관문공항 이슈에 올인하고 있다. 선거용이라는 비판은 당연하고, 오늘의 이슈에 올인해야 하는 미디어도 선거용이라는 비판을 해야하겠으나, 관문공항 문제를 선거 전에 거의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선거철이 되어서야 선거용으로 이슈화하고 있는 건 중앙 미디어도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이렇게 자꾸 중앙 미디어 비판을 해서 관계자들께 미운털이 박히고 있지만^^)

 

*관문공항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탄소배출 문제 등 기후위기 관련해서 어떤 파장이 있는지, 결국 토건개발 사업에 불과한 방식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점검할 논제는 많다.

지역균형 뉴딜 사업이 이전의 국토균형발전 사업을 이어받은 거라고 해서, 열심히 미련하게 사업 팔로우를 해보았다. 어이없게도 부산형 뉴딜 사업은 거의 의미가 없거나 기획 자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소략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이게 왜 이런 건지 사실은 알 수가 없다. 현재 상황, 빅카인즈로 검색해보면 이제 '지역균형 뉴딜 부산 사업'은 모두 '가덕도 신공항'으로 환원되어버렸다. 이게 많은 걸 함축하는 것 같다.

 

*탐라에는 이전부터 정의당 정책이나 페미니즘 기조 정책을 서울 수도권 중심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하는 플로우가 있다. 이 플로우가 때로 반페미니즘 정서를 강화하고 대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지역에서 관문공항에 대한 중앙 미디어나 이른바 수도권 중심의 논의에 대해 쏟아지는 불만을 이런 플로우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부산경남, 대구 경북 사람들은 이 관문 공항이 정말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 지역 사람들이라는 일반 주체는 없기에 이런 질문도 바꿔야 한다. 관문 공항은 벌써 20년 넘게 '공약-빈 약속'이었고, 지역 주민들이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다. 관문공항 하나로 지역 경제가 살아날 만큼 그렇게 지역 경제가 낙관적이라고 믿는 지역 주민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관문공항은, 부산경남, 대구경북에 오랜 세월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었고, 이는 중앙정부가 지역을 대하는 기본적 자세였다. 대부분 지역 사람들은 이 약속이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으리라 감지한다. 정부가 야단법석을 치면서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고 엄청난 무리수를 두어도, 실은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데도 왜 지역 사람들은 관문공항 이슈에 올인하고 있을까? 그게 바로 중앙의 지역에 대한 태도의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너거가 이번에는 우짜나 보자'

 

하지만 아마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지역사람들에게 그 약속은 '지역의 균형 발전'이라는 말로는 환원되기 어려운 어떤 정동의 이름이다. 익숙한 이름으로는 아마 '벗어나고픈 욕망' 정도로밖에 설명하기 어려운. 혹은 '자부심'

서울 수도권 지역에서는 '개쌍도' '빨갱이당"처럼 보수반동지역으로 인식될 뿐이지만,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은 또 다르고 부산 내부도 사실 다 다르다. 그럼에도 어떤 공통성은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서울과 다르다는 정동, 혹은 서울을 선망하면서도 벗어나고자 하는 정동이라 하겠다. 이것 역시 기존의 감정 체계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역 사람들은 '관문공항'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지방 공항이 아니고, 지방의 수요를 충족하는 공항이 아니고, 세계로 나가는 문, 세계가 들어오는 문을 원한다. 지역이 서울과 수도권을 경유하지 않고, 그 경유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세계로 열리기를 원한다. 지방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과, '지방'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이건 자기 부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방의 자리에서 벗어나, 지역 주권적인 자긍심을 정립하고자 하는 열망.

 

*서울에서 지방대에 온 사람들이 초기에 이른바 지역 명문대 출신의 '위세' '꼬장꼬장함'에 놀란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로 그 위세가 텃세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규정만으로 환원되기는 어렵다. 지역의 토착 정서와 오래 싸워왔지만, 어떤 점에서 이른바 그 '위세' 그 "꼬장꼬장함"이야말로 지역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꽤 오래 하게 되었다.

 

*지역 미디어에서는 '서울 미디어'가 관문공항을 매도하고 있다는 기사가 격앙된 논조로 실리고 있다. 이 논조는 지역의 꼬장꼬장함과도 관련되었지만, 지역의 미디어의 정치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역 미디어가 지역 주민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반면 지역을 비판하고 관문공항 문제를 그저 손쉽게 '토건신화', '선거용'으로 소비하고는, 그 모든 남은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이곳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모든 걸 알 수는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까 모르면 알려고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지역에 대해, 지역 사람들의 정동에 대해서는, 알고자 하는 의지도 시도도 하지 않는 게 이 탐라의 현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