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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다른 자리를 향한 발걸음, 일기 본문
이틀 간의 국제 심포지엄을 마치고
라디오 들으면서 커피 한잔 하는 오후.
1. 한국, 대만, 일본 혹은 트랜스내셔널을 넘어선 새로운 젠더어펙트 연구 연결성
좀 긴 지속성 속에서 공동 연구를 하고 싶어서 첸페이전 선생님과는 계속 여러 자리를 만들고 있다. 나이토 치즈코 선생님과는 <분가쿠> 좌담부터 카시cassi로 이어지는 정말 긴 연구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한 달에 한번 모임을 하면서 공동연구 기획을 하고 있다.
특별한 제안을 드린 건 아니고 매번 두 분 선생님이 지금 하고 계신 연구를 청해 듣는 자리인데 항상 뭔가 우리 연구팀의 주제와 맞닿아 있어서 신기하다. 이번에는 특히 과거와 어떤 연결성이 없는 듯한 현재의 상황들을 역사와 신체적 연결성 속에서 해석하고 교육하는 연구를 제시해주셔서 공부하는 재미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이토 치즈코 선생님의 <<아이돌 국가의 성폭력>>도 읽어보시길.
며칠 전에 <재팬 패싱> 현상을 논의한 기사를 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논의보다는 일본 연구자분들 작업이나 또 한국에서 일본 연구자분들과 교류하고 공동 연구하는 네트워크에 좀더 관심을 두고 소개하고 찾아보고 공부하는 논의가 지면에 더 필요하다는 생각.
그러나 하지 않는다. 어차피 미디어에서 한일 관계란 외교 경제 정치 몇 가지 키워드 말고는 없고 학술 취재는 안하고. 그러면서 맨날 몇 사람에게 마이크 주고 이상한 말 주고받으며 '공방' 민족주의 운운하는 기이한 담론을 반복한다.
카시를 하면서 우리는 한일 연구자라는 규정을 생각하지 않았다.
젠더 연구자로서 한국과 일본의 여러 대학 학회장에서 우연하게 만나기 시작했는데, 항상 큰 행사에 한 세션으로 할당된 젠더 연구 발표자로 만나게 되었고, 젠더 연구와 무관하고 젠더 연구를 무시하는 학자들의 길고 긴 발표를 너머 겨우 허락된 몇분간 총알같이 발표하고, 주최측 뒷풀이에서도 서로 이야기할 기회도 없이 온갖 의전 만남을 반복해야 하는데 지쳐서 모임을 꾸려서 카시를 시작했다.
젠더연구자들이 모여서 행사가 아니라 연구를 나누기 위해 그저 만나는 자리 그게 카시cassi이다. (고영란, 나이토 치즈코, 나카야 이즈미, 권명아)
이번 컨퍼런스의 여러 논의는 젠더 어펙트 연구를 경유해서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과 역사를 가로지르고 마주했다. 그건 한일 비교 연구나 트랜스내셔널 연구 같이 역시 내셔널을 단위로 그걸 넘거나 비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방향성을 이미 체현하고 있었다.
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젠더어펙트 연구라는 공통성의 산물.
그리고 신체와 신체 연결성 연결신체를 통해서 지역, 국가라는 기존 영토와는 다른 지리로 이행하고 변용하고 있는 오늘 여기의 어떤 연구의 현장이 연구소의 심포지엄을 통해서 발현한 것 같다.
2. 다른 자리로 이행 중인
아프콤에서 젠더어펙트 연구소로 이어지는 다른 자리를 향한 실험에서 '일본행'은 큰 변곡점이었다.
아프콤 멤버들에겐 "2011 일본"은 기이한 변용과 이행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새겨진 시간이다.
서울 sky 출신인 교수로서, 수유-너머나 다지원 같은 대안인문학 운동체를 지역에서도 만들고자 하는 실험은 지역의 다른 조건에서 매번 실패했다. 또 서울의 대안 단체와의 교류는 표현하기 어려운 '빈정상함'의 기억만을 남기고 끝났다.
그러면서 실패에서 끝나고 싶지 않아서 일본에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몸의 기억일까 싶기도 한데. 한국에서 취업 투쟁이 실패했던 방학마다 비정규직 연구자였던 시절 주머니를 털어서 훌쩍 일본으로 향했던 그런 몸둘바의 체현 감각이 컸으리라.
좌절하고 싶지 않아서(이상한 표현이지만) 1주일짜리 위클리멘션을 빌려 와세다 도서관, 교토대 자료실에 틀어박혀서 덥고 추운 방학을 복사기 앞에 서서 보냈다. 그 몸둘바는 나를 다르게 움직이게 해주었다. 일본이어서가 아니라.
부산에서 일본으로 몸을 이끌고 움직이게 된 건 그렇지만 내 몸의 감각보다는 부산에서 이미 구성된 지역적 인접성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고 이후에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지방 소멸, 지방대 소멸 이야기가 멈추지를 않고 무한 생산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무한 생산을 멈춰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페북에서 깊은 좌절감을 안고 잠시 떠나야 했던 건 이런 이유도 깊었다.
이런 담론은 막상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압박과 중압, 좌절만--이게 중요하다, 오로지 그것 말고는 주는 게 없다는 점---안겨준다. 그리고 현실 진단도 틀렸다.
이런 <소멸>담론은 무의미하고 오히려 지역/지방에서 어떤 일이 모색중이고 어떤 대안을 만들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담론화해야 하는데 수도권 미디어는 이런 걸 할 관심도 여력도 없다. 지방 주재 기자가 없으니 말이다^^
2011년 즈음 일본으로 향할 때 서울에 있는 어떤 학회에서 발표를 하면서 지방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이런데 십년 후에는 과연 지방대가 존속할까? 혹자는 정년하시면 부산에 계속 계실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도.
그때 이런 답변을 했다. 20년 후에 부산이 여전히 한국의 일부이거나 서울이나 수도권을 중요한 파트너십이나 관계항으로 두고 있을거라는 전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냐? 물론 조금 과장된 말이지만 실제로 타이완에서 있었던 <미국의 52번째 주되기 운동>에 대한 분석(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네요^^)에서 일국 내에서 차별받는 지역이 기존 국가 소속을 넘어서 다른 지역과의 일체화를 시도하는 게 전혀 새롭거나 기이한 현상이 아닌 시대가 되기도 했다. 국경은 여전히 유지되더라도 결속과 연결성은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다.
부산은 2010년대 초반부터 큐슈 지역과 경제권을 통합 새로운 광역화를 진행하고 현실화해왔다. 그러나 이명박근혜의 반일정책과 역시 이번 정부의 반일정책으로 이 새로운 광역화 구상은 좌절. 현재 추진중인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도 이미 2010년대 초반 시작된 이런 일본 큐슈와 간사이와의 광역화가 바탕이 될 때 의미를 지닌다.
(얼마전 심포 발표에서 경남대 팀에서는 이런 국제적 광역화는 '실현가능성없는 환상'이라고 진단하시는 것 같았다.)
메가시티 구상에 일개 젠더어펙트 연구자인 내 연구나 실천은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그와 아무 상관없이 우리는 계속 다른 자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카시의 연구 기획과 출간, 그리고 김이진 선생님(히토츠바시)이 연구소에 합류하시면서 젠더어펙트 연구소도 코로나로 잠시 중단했던 발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그건 한국과 일본을 잇는 교류 같은 것과는 다른
다른 자리를 향한 발걸음이고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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