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alicewonderland

페미니스트로 사는 게 선생의 삶이라는, 벨 훅스를 추모하며 본문

몰운대 일기/여기가 아니었더라면

페미니스트로 사는 게 선생의 삶이라는, 벨 훅스를 추모하며

alice11 2021. 12. 18. 12:59
"서울 출신들은 '우리'랑은 다르지."
겹겹의 이곳 출신인 선생은 학생들에게 '우리 선생'의 경계를 노골적으로 강조하곤 했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 선생'이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은 '우리 일'이 아니다. 꽤 길게 '우리'의 벽과 싸우고 나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사실 그건 내 선의나 열심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선생으로서 나는 어떤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과연 내 자리는 있나라는 번민은 지금도 나를 과로사 직전으로 몰아가며 나를 스스로 몰아치는 회초리다.
그렇게 아마 영원히 '우리 선생'도 '우리 일 하는 사람'도 되지 못하겠지만 그와는 다른 뾰족한 내 자리도 매겨지고 있는 것 같다.
젠더어펙트 연구자 선생님.
뾰족하게 내 정체가 널리 알려져서 알 수 없는 힘겨움도 있지만
아주 작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내 선생으로서의 필요와 의미를 피드백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장애학, 비판적 정신의학, 젠더 연구
이런 말들이 그저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고, 또 뭔가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장애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내 능력에 대한 규정과 맞닿아 있는 문제였구나 알게 되었다는 피드백.
그래서 스스로 지방 사립대 학생으로서, 나는 여기까지라거나, 내가 그걸 할 수 있나? 내가 뭐 열심히 해봐야 어차피....이런 생각으로 사실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항상 고민만 했는데
이제 '내 안에 들어온 차별'에서 좀 벗어나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들.
해방된 사람이 해방한다는
무지한 스승의 교훈(랑시에르)을 내게 다시 건네주는 사람들.
그들이 스스로 공부하면서 해방하는 힘을 찾아가는 길에
공부자리를 함께 하는 선생으로.
'나는 여기까지'라는 정해진 삶의 반경에 주저앉지 않을 힘을 같이 만들어가는 선생으로 불러주는 피드백.
그리고 그건 내가 여기서 결코 '우리 선생님'도 '우리 일을 하는 사람'도 되지 못했고 될 수 없지만
그것과는 아주 다른 의미로 지방대 선생의 자리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건 순전히 젠더어펙트 연구자로서 지방이라는 차별적 자리를 함께 앓고 사유하고 넘어서는 선생이라는 피드백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항상 허덕이고, 힘들고 좌절하고 앞이 안보이지만
그런 피드백 속에서 겨우, 그리고 끝내
나의 여기 있음의 의미가 오롯하다.
그리고 그 피드백을 통해 역시 자신의 여기 있음의 의미를 오롯하게 생성하는 이들이 있기에, 나 역시 끝내 여기 있게 될 것이다.
---
선생의 모델을 갖지 못했으나 벨 훅스는 페미니스트란 영혼을 다루는 교사라는 말을 준 스승.
앞이 안 보이는 이곳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게 선생의 자리이자 교사의 삶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 선생이었다.
그녀의 영혼도 길고 긴 투쟁의 삶을 마무리하고 안식을 얻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