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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문학의 삶과 죽음 본문
<문학의 삶과 죽음>
주말에 쉴 틈이 생길 때 겨우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일(연구)로 보는 경우도 많지만 쉬기 위해 보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는 쉬려고 영화를 조금 찾아보았는데, 약간 일이 되었다.
그래서 일을 해보기로.
미투 운동,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등 전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소수자 운동은 여러 방면으로 확산되었다. 운동이 큰 힘을 갖고 부상하던 시기를 다소 지나, 지금은 여러모로 '소수자 운동을 부정하는 반격의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전지구적으로 부상한 소수자 운동은 그 외양이 변했어도 여러 양태로 변용되어서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역사 다시 쓰기'이고 '과거의 정전을 소수자 관점에서 다시 쓰기'의 흐름 역시 이 연장에 있다.
한국에서 <오징어게임>에 열광하던 시기 전세계 넷플릭스 열풍은 <뤼팽>으로 모아졌다. 논문에서도 분석했는데, 코로나 시기 <오징어게임>, <뤼팽>, <종이의 집>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은 넷플릭스가 그동안 시청자로 포섭하지 못했던 비영어권 중년 남성 시청자를 유인한 여러 정동적 장치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가지 이 세 텍스트 모두 '과거'의 재구성 혹은 근대의 유산(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재해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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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하나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의 경우
<청산되어야 할 제국주의 프랑스의 정전에서 마그레브 문학(식민지 소수자성)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정전으로 변용>
오늘 주제인 <문학의 삶과 죽음>으로 돌아가보면, <뤼팽>의 재해석과 전세계적 흥행은 흥미롭다. <뤼팽>은 모리스 르블랑의 원작(백인 귀족 바람둥이)과 달리 프랑스 구식민지 출신 이민자로 그려졌다.
물론 그래서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또 한국에서는 <뤼팽>에 대해서도 '블랙 워싱'이라거나 "소수자를 의무적으로 배역에 할당해야 하는 강제적인 정치적 올바름의 부정적 영향"과 같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해석이 미디어에 실리기도 했다.
프랑스의 자국어문학에 대한 하늘을 찌르는 자부심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어 문학 연구에서도 기존의 정전 연구나 백인, 자국, 엘리트 중심 정전 연구 비판은 당연고도 치열하게 이뤄졌다. 이른바 마그레브 문학연구도 그런 정전 비판 과정의 산물이다. 프랑스의 구식민지(북아프리카 중심의) 등에서 포스트 식민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제국 프랑스의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을 연구하는 흐름이 새롭게 부상한 것도 이미 오래 전이다.
한국에서도 엘리트 중심적인 정전 연구에서 마그레브 문학 연구로 크게 흐름이 변화했다고 알고 있지만 연구 결과는 많지 않다.
성차별적인 프랑스인 백인 남성 주인공의 <뤼팽>이 아니라 구식민지 출신 이민자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뤼팽>은 그런 시도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프랑스 문학의 정전 이념을 비판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뤼팽>은 그 수명을 다하기보다, 그 정전이 제국주의적이며, 성차별적이라는 이러한 비판과 '청산' 작업을 통해 다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이러했다>는 <역사적 사실의 불변성>에 대한 강조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재해석하고 그런 재해석을 통해 문학의 삶과 죽음을 재구성하는 정치적 행위성의 작용이다.
<소수자 정치의 관점에서 정전을 비판하고 재구성하기>
이런 흐름은 이른바 비영어권 '고전'의 재해석 과정에서도 흔하게 드러난다. 또 이 과정이 전지구적으로 '자국어문학 고전의 재의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뤼팽>은 영국의 <셜록 시리즈>의 성공에 자극 받은 바 크다. 또 <셜록 시리즈>의 성공은 그 대립쌍인 <에놀라 홈즈 시리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에서 해리 포터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텍스트로 선정되기도 한 낸시 스프링어의 <에놀라 홈즈>를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에놀라 홈즈>에 대해 코난 도일 재단이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내기도 했고 코난 도일 재단은 이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늘상 내는 걸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작권이 2022년 만료된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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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가 앨런 포우, 퀴어연구 장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고딕 장르의 한계와 의미>
최근 개봉한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는 에드가 앨런 포우를 사관학교 생도이자 탐정으로 등장시킨 루이스 베이어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초반은 베트맨(크리스찬 베일)이 고작 악령 들린, 병든 소녀를 제압하는 서사라니 한심하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의 핵심은 반전인데, 에드가 앨런 포우 소설의 미투운동 버전이라고 할까. 물론 여전히 죽은 여성들의 진실을 남성이 찾아가는 서사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런 서사적 반전은 흥미롭고 영화 내내 크리스찬 베일에 끌려가던 관객의 관극 체험을 뒤집는 효과도 있다.
이런 반전은 소설 원작의 힘이기도 하지만, 이런 소설(정전을 재해석한)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에드가 앨런 포우를 비롯한 이른바 근대 초기 영국 소설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에드가 앨런 포우 연구도 정말 별로 없고, 젠더/퀴어/장애학 등의 관점에서 포우 작품을 재해석한 연구 자체가 없다.
그러나 영어권 연구를 비교해보면 바로 작년까지도 에드가 앨런 포우 작품을 젠더/퀴어/장애학/ 탈식민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비판적으로 재해석한 연구들이 박사논문, 단행 논문을 가리지 않고 다수 나오고 있다.
<미투 운동 이후 한국문학 교육은 가능한가>
미투 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이런 질문이 이어졌다.
최근 고은 작품집 발간에 대한 이른바 문단 중진들의 발언을 보면 아마 이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때는 그랬다", "전 생애를 돌아볼 때 큰 문제가 아니다."
이건 무엇보다 이른바 친일 전시 협력에 대해서 정당화하던 논리도 없는 궁색한 논의를 꼭 닮아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비판을 차단하고, 비판에서 '정전'을 구해야 한다는 자기방어적 태도는 오히려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그 문학의 죽음을 더욱 앞당길 뿐이다.
이 분들 생각에는 매우 '역설적이고' 인정할 수 없겠으나,
페미니스트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자국어문학 정전을 다시 확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오히려 이런 정전 해체, 소수자 관점에서 강력한 정전 비판 그리고 어쩌면 '청산'을 통해서, 그렇게만 활성화될 수 있다는 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학계나 어디나, 오늘날 페미니즘과 소수자 운동을 적으로 보기 바쁜 게 한국의 현실이지만
그 적들이, 오늘날 죽은 문학에 삶을 돌려주는 행위자라는 '역설'을 아마 끝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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