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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박지현의 역량 문제"라는 문제 본문
- "박지현의 역량 문제"라는 문제
(공부 노트)
박지현씨 관련해서는 발표 자리도 고사했다. 계파들의 담론 투쟁에 굳이 사용되고 싶지 않아서.
'한가하게' 공부하면서 생각해보고 싶어서 적어두는 메모.
영어권, 특히 미국에서 어펙트 연구가 엄청 치열하고 또 이론 논쟁이 뜨거운 건 포스트 오바마 시대, 이른바 트럼프 집권을 거치면서로 보인다. 특히 차별과 관련한 어떤 변화들.
'미국에 더이상 인종차별은 없다. 다만 인종 갈등만 존재할 뿐"
이런 식의. 이 담론도 먼저 학계에서 시작되었고 '대중화'됨.
즉, 미국 내 인종차별에 대한 새로운 '전선'에 어펙트 연구는 맹렬하게 휘말려서 그 한가운데서 분투 중이다. '전선'은 전쟁의 메타포가 아니라, 전쟁을 '능력'으로 정당화하는 지식 패러다임에 개입하는 담론 투쟁의 하나.
한국에서는 어펙트 연구를 '너무 이론적'이라고 하는 반응도 많지만.
젠더/퀴어 연구가 그랬듯 어펙트 연구는 강단/현실이라는 구별을 넘어선 학문과 혁명, 학문과 전쟁의 경계를 다시 만들어냈다.
최근 어펙트 연구에서 이런 시도는 신유물론 특히 해러웨이에서 카렌 바라드에 이르는 지식 생산과 차별, 차이에 대한 논의를 연결하면서 더욱 활발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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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교차성' 이론에서 인종과 젠더, 계급 등의 교차성에 대한 논의와는 또다른 맥락에서
"계급과는 또달리, 왜 인종과 젠더는 언제나 기이하게 서로 연결되는가"와 같은 질문.
"흑인성blackness이나 인종적 종속에 대한 질문과 대안 이론을 모색함과 동시에 인종적 교차성 혹은 인종적 교차를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행위자성으로서 "유색인종colored people"이라는 문제설정의 재발견.
(이건 지금 세미나에서 같이 읽고 있는, 너무나 훌륭하고 매력적인 시엔 야오의 Disaffect 중의 논의, 디스어펙트는 너무 아껴 읽고 있어서^^ 방학 중에는 야금야금 포스팅을 할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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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역량에 대해.
보편적 어펙트 이론을 비판하면서 보편적 어펙트 이론은 "racial problem(인종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는 논의들은
정동적 전환 이후
정동 연구의 퀴어적 전환
정동 연구의 인종차별비판이론적 전환
퀴어 연구의 반사회적 전환
과 같은 여러 전환을 거쳐서 진행 중.
이 전환들은 특히나 포스트 오바마 시대
다시한번 말하지만 "미국에 더이상 인종차별은 없다. 존재하는 건 (서로 경쟁하는 에스닉 그룹들 사이의) 인종 갈등 뿐"이라는 어떤 시대 전환에 대항하는 학문적 실천의 산물.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뭔 인종차별이 있냐. 흑인은 더이상 인종적 소수자가 아니다. 어떤 흑인이 차별받고 있다면 그건 미국이 인종차별적 사회여서가 아니라, 네 역량의 문제인 것. 혹은 계급 문제. (인종이 아니라 계급 문제라는 전도 구조는 한국에서 젠더와 계급 간에도 벌어지는 일)
포스트 오바마 이전부터 이어진 질문
"왜 죽이는가" 그리고 "왜 유색인종을 죽이는가"에 대한 질문.
미국이 백인 중심 사회이고 그걸 유지하고 싶다면 유색인종을 게토에 가두고 특권을 유지하면 될 터인데. 왜 굳이, 꼭 죽여야 하나?
그리고 그 살해는 단지 '권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Toward a Global Idea of Race, DENISE FERREIRA DA SILVA)
다 실바는 해러웨이와 카렌 바라드의 상황적 지식 개념과 ethico-onto-epistemological question of matter "윤리-존재-인식론적 문제" 개념을 통해서 이에 대해 논의함.
다실바는 18살에 살해당한 부루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Our generation died when our fathers was born.
—bruno, black male, age 18 (mid –1990s)
"우리 세대는 우리 아버지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죽었다."
근대 사회과학이 유색인간들colored people을 살해하는 걸 정당화해 왔다, 과연 어떻게 그 무기들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 책의 초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는 우리 아버지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죽었다.’
'보편적 인간의 역량"(투명한 나, 이성적 역량의 주체로서 나)은 그런 점에서 백인 남성됨 white men과 그 타자들에 관한 모든 사유의 근간이 된다. 그 타자들은 영원한 사물matter의 '운명'을 미리 할당받는다. 포스트 계몽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학문'과 지식의 이름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주체 생성은 진행 중이다.
시엔 야오의 책은 이 '역량의 주체'라는 '과학'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서로 다른 주체를 무대 위에 올리는 지 매우 흥미롭게 기술한다. (이 책은 서술 자체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같이 읽는 사람들 모두 정말 아주 드물게 글을 읽는 재미에 빠지게 하는 책이라는 반응)
그러니까 역량의 주체에 대한 논의와 그 무대화 과정은 이렇게 차별이 재구조화되는 과정이다. 또 그 과정에서 인종과 젠더, 계급의 얽힘을 읽어내는 것이 바라드나 다실바가 말하는 '회절적 읽기'(비판적 읽기와 구별되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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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박지현의 역량 문제"라는 패러다임은 사실상 한국에서 '역량'이 젠더, 인종, 계급, 연령에 따라 어떻게 할당되고, '객관화'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윤리-존재-인식론적 문제"에 입각한 회절적 읽기는 "박지현의 역량 문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박지현의 역량 문제"라는 패러다임을 "문제로 만드는" 방식의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박지현은 '지방대(한림대)' 출신 여성이고 학력, 출신 지역에 대해서도 계속 "논란"이 있었다. 같은 나이에 정치 입문한 이준석 대표가 '역량 문제'로 문제가 된 적이 없고 "싹아지 문제'가 주로 문제가 된 것도 흥미롭다. 국민의 힘이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고.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어떤 징후를 '이대남'이나 '공정' 문제로 해석하곤 하지만, 많은 부분 이른바 "하버드 출신 남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신분제와 이른 지탱하는 학문 생산 제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게 미국에서의 어펙트 연구, 신유물론,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의 방식)
다실바의 표현을 인용해서 응용해보자면
"한국 사회과학은 '능력없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걸 정당화해왔다.
우리는 어떻게 그 무기가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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