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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죄는 사실일까 이름일까 본문
1. 쿠데타와 특수범죄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비상조치법 22조 1항에 의거 특수범죄처벌 특별법을 제정. 1960년에서 68년까지 범죄상승률에서 가장 두르러진 게 이런저런 특수범죄이다. 특히 이중 "불우한 여성"에 의한 범죄와 "소년범죄" 발생이 급격하게 증가.
1950년대에도 미성년과 범죄를 연관하는 정책은 지속되었으나 "범죄소년"이라는 카테고리는 5.16 이후 지속된 소년범 제도의 강화와 개정의 산물.
"이브의 범죄"(불우한 여성에 의한 범죄)와 "소년범죄"는 당시 경찰 통계와 '사회조사' 통계를 보면 "실제로" 엄청나게 증가한다.
이런 통계적 증가는 다시 미디어나 '지식인들'의 염려의 대상이 되었고 담론 공간에 이런 특수 범죄와 집단에 대한 염려와 계몽의 열기가 가득차게 된다.
소년범죄와 '이브의 범죄'에 대한 당대의 억압적 통제와 규율화는 '범죄'라는 사실 근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을까?
(연구 초기 나 역시 이런 고민이 깊었다. 범죄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기면 범죄가 생긴다.^^ 적어도 어떤 사례의 경우는 그러하다. 이 시기 이브의 범죄나 소년 범죄는 특수 범죄 내부에 젠더화된 범주들이 발생하면서 생긴 결과이다. 그게 내 연구의 결론. 그렇다면 이런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냐 혹은 이런 범죄자가 정치적 주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거냐라는 질문을 선배 연구자들에게 수도 없이 받았다. 그 긴 스토리는 음란과 혁명을 보시길.)
2. 반동 혁명과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묻는 심문의 정치
나는 이에 대해서 <<음란과 혁명>>에서 이렇게 해석했다.
4월 혁명 당시 일부 문제 학생(구두닦이라고 불렸던 하층 계급의 일하면서 공부하던 학생들)과 불우한 여성들은 사회적 혼란을 유발할 우려를 지닌 문제 집단으로 경계 대상이 되었다. 이는 혁명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 사회적 혼란에 대한 공포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4월 혁명 당시에도 혁명에 대한 열광과 열정이 사회적 혼란에 대한 공포, 혁명에 대한 반작용과 경향적으로 혼재해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략)
미성년이나 하층 여성이 사회적 혼란과 문란함을 유발하는 부적절한 정념의 소유자로 간주되는 방식은 근대 체제 이래 경향적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은 4월 혁명이 실패한 뒤 미성년과 하층 여성(그리고 하층 남성들까지도)들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는 문턱까지 밀어넣는 폭력적 과정으로 전도된다.
소년 범죄, 이브의 범죄, 특수 범죄라는 신종 범죄의 탄생은 그런 점에서 4월 혁명의 실패와 쿠데타로 이어지는 반동 혁명의 과정이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둘러싼 죽음의 정치로 선회하는 명확한 표지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음란과 혁명 3부 : 정조 38선, 혁명과 간통의 추억과 풍기문란>>
3. '이대남' 담론과 '극단적 페미니즘' 담론을 연구하는 나의 관점은 이런 연구의 연장에 있다.
이십대를 젠더갈등이라는 패러다임으로 환원해서 '문제집단'으로 만드는 담론.
반페미니스트 이대남과 극단적 페미니즘을 추종하는 이대녀
이는 사실의 문제일까 이름의 문제일까.
아니 이 연구의 질문은 여기 있지 않다.
이런 문제집단 담론, 혹은 특정 집단을 '사회병리 social pathology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시대의 통념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이런 사회병리 담론은 그 시대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통념의 한계에서 촉발된다. 또 특정 집단(오늘날의 이십대)의 정동이 기존에 이미 구성된 사회통념과 부합하지 않는 어떤 잉여이자 과잉으로 해당 사회의 지배적 집단에게 감각되고 의식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이들 문제집단의 '병리의 원천'을 규명하는 백한가지 처방은 이런 사회병리적 관점으로 이들을 포획하는 힘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거냐?
4. 정동 연구가 총체적 전망perspective이 아닌 아직은 알 수 없는 힘들의 발생론에 대한 연구인 이유.
풍기문란 통제의 역사를 뒤쫓아 이백년이 넘는 역사적 이행의 시간을 오가면서 정동 연구와 만나게 된 건 아마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의 길에 내가 합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럼 어떻게 이 힘들을 병리적 관점도, 총제적 관점도, 진화론적 발전의 관점도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무수한 연구자들의 연구를 만나게 되었고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 힘들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하며 그 이행을 미리 예측하여 장악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힘들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예측, 총체적 장악의 사유 패턴을 넘어서야만 한다.
5. 물론 선거나 단기적 정책 수립을 위한 사회조사 연구는 이와는 다른 관점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연구가 정치적 주체(화)나 정치적 이행에 대한 정치적 사유를 대체하거나 대신할 수는 없다.
(풍기문란 연구를 하면서 흥미로웠던 건 풍기문란을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규율하는 학문적 방법을 제공했던 게 사회조사 방법론이었고 일본에서는 이에 대한 사회조사 연구 영역에서의 자기비판의 역사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정동 연구나 범죄사 연구 같은 연구가 기존 학문 방법론과 단절적인 자기 비판의 과정을 거치는 건 공통적이다. 즉 제가 꼭 어떤 연구 분야를 비판하는 건 아니고 해당 분야의 연구사의 맥락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학기를 마치고, 연구 모드를 다시 켜는 의미로 써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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