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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강의안 노트 본문

연결신체이론/alien affect

<서화> 강의안 노트

alice11 2024. 6. 25. 12:19
이기영은 빈농 출신의 사회주의 작가이기도 하지만 동경 유학도 다녀온 지식인 남성 작가이기도 하다. 동경 유학 가자마자 관동 대지진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기영은 이른바 "팔려가는 여성들" 혹은 딸을 결혼 계약이나 노동 계약 형태로 '팔아야 했던' 당대 식민지 농촌 현실에 오래 천착했다.
 
또 이런 여성에 대한 약탈적 노예화와 풍속통제의 관련성을 일찍이 간파했고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서화>이다.
 
이번 학기 수업을 하면서 최근 제작된 1920~30년대 한중일 역사에 대한 영화와 비교하다보니 영화광이었던 임화가 <서화>에 왜 그리 열광했는지 새삼 보이는 지점이 정말 많았다.
 
<서화>가 정동적 텍스트로서 재현이나 언어적 층위로 환원되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은 정동 연구 초기부터 강조했는데.
 
이런 정동적 텍스트로서의 특징과 영화적 미장센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이번 학기 수업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서화>는 단편(이라기보다 중편에 가까운)이지만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등장할만큼 인물이 다채롭게 등장하고 그 비중도 거의 다 비슷하다.
 
작품 구성 자체도 돌쇠-돌쇠 처-돌쇠 엄마-돌쇠 아버지 이첨지-이쁜이-이쁜이와 원준이-풍속 통제 재판 장면으로 이어져서 각 인물 마다 저마다의 포지션에서 '도박과 간통'에 대해 항변하고 재판한다.
 
즉 재판 장면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재판은 시작되었고, 풍속 통제 재판에서 '법적 판단'의 행위자 자격을 부여받은 이들이 아닌 마을 사람들 위치에서 판단의 행위자성을 수행하도록 작품이 구성되었다.
 
또, 일본 제국의 농촌 수탈을 투기 자본주의 차원에서 포착. 제국주의와 투기 자본주의가 결합하여 지대(땅값), (이중화된)소작료를 통해 어떻게 정동화하는 지 너무나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또 지대, 소작료에 대한 투기화와 마을 공동체의 '심성구조(인심)의 파괴, 농민의 '탈노동화(도박)와 투기화, 친밀성(간통)의 변용을 촉발하는지 탁월하게 포착한다.
 
또 땅에 대한 투기자본주의의 관계가 신체에 대한 노예화적 약탈의 젠더화된 관계, 친밀성과 공동체성을 비롯한 신체적 연결성을 파괴하고 개조하는 생명정치적 통제와 분리될 수 없음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서화>에서 그려낸 풍속통제가 대지, 공동체, 신체들의 연결, 대기와 기세, 마음을 모두 법과 경찰력으로 장악하려는 식민 통치의 새로운 방식에 있음을 밝혀내는 소설적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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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논평.
이기영은 <서화>에서 수탈 당하는 빈농으로서 돌쇠의 위치에만 동일화 하지 않고 돌쇠를 정치적 저항 주체나 피해자로 고정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돌쇠의 위치는 돌쇠 처를 통해 비판된다.
 
이쁜이 역시 수동적 피해자로 그리지 않고, 이쁜이를 둘러싼 응삼, 원준, 돌쇠의 권력 관계와 이쁜이의 성적 자기 결정권, 그리고 주권을 향한 열망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다만 이쁜이가 팔려온 신부이고 매매 주체인 응삼이와 응삼 가족에 대해서는 소설에서 다소 모호하게 그려진다.
응삼 모가 매매혼을 한 동기는 응삼이 '모자란 인물'이기 때문이다. 작품 내내 응삼을 바보, 천치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작가의 거리두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응삼과 가장 갈등적인 관계에 있는 돌쇠(돌쇠가 일부러 응삼이를 꼬여서 소판 돈을 따먹은 것이 소설의 발단임)는 사실 속으로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응삼이에게 여러모로 미안한 죄책감을 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응삼과 응삼 가족에 대해서 돌쇠, 돌쇠 어머니, 돌쇠 아버지를 통해 여러모로 그 오래된 친밀성의 관계에 대해 강조되는 데 이 부분을 이번에 다시 살펴보게 되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마을에서 응삼을 "바보. 천치"가 아니라 '오랜 친구'로 대해온 이는 돌쇠가 유일한 데, 그 우정 또한 위기에 처했다. 이 부분도 이번 수업을 하면서 다시 발견한 부분. (도박과 간통과 관련해서 가장 갈등 관계에 있는 인물이 응삼이기도 함. 즉 어떤 점에서는 응삼이야말로 소설에서는 돌쇠의 행위로 인한 부차적 피해자임)
 
하여간 젠더, 계급에 대해 이기영이 보여준 매우 민감한 접근 방식에 비해 장애에 대해서는 특히 <표현 방식>에서는 다소 첨예하지 않은 게 사실이고, 이건 당대의 현실이기도 했지만 이런 점도 고려해서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콘텐츠로 제작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