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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반차별교육 본문

혐오발화아카이브/반헤이트스피치 차별반대운동

페미니즘과 반차별교육

alice11 2020. 2. 11. 04:37

2020. 2월 11일 새벽 4시.

 

너무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잠이 깊게 들지 않고 뒤척인다.

신경을 끄기 위해 어제 등산도 꽤 오랜 시간 했는데

돌아와서 다시 탐라를 보며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적어둔다.

 

뭔가 자꾸 원점으로 돌아오는, 혹은 데자뷔 같은 느낌이 든다.

나도 결국 내 주장을 강변하기 위해, 혹은 내가 맞다는 생각으로 사태를 보고 있는걸까. 

오래 아주 오래 그런 자기검열을 해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든 일과 개입을 그만둔 것도

헤이트스피치문제에 대해서도 개입을 중단한 것도.

온통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 느낌을 벗어날 수가 없는데, 설득이나 토론, 비판도 결국 가닿지 않는건

그리고 그 분야에 관련한 사람들이 내 비판을 어떤 식으로든 '과하다'고 느끼는 건, 결국 내 문제이겠지. 그럼 그만하자. 그렇게 다른 길로 나아가려고, 애썼고, 지금도 그렇게 가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완전히 중단했고. 헤이트스피치 문제는 학생들 교육을 위해서도 그만두긴 어려워서, 교육에 집중하고 다른 작업은 안하려고 노력중이다. 

 

또 결국 혐오인가.

헤이트스피치와 차별선동에 대응하고, 또 이를 위한 시민 교육이나 넓은 의미의 '교육'과 대안과 제도를 마련하려면 '혐오'라는 막연한 주관적인 정서적 함의로 사태를 환원하면 안된다고 정말 오래 문제제기해왔는데. 

하다못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국가인권위원회도 그리고 이 단체에 직접 관련된 사람들 자체가 이런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나만 이 문제를 연구한 게 아니니까, 그게 맥락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 나는 거기까지라는 생각을 하고, 관련 연구도 이제 접고 책도 내지 않을 생각이다. 

 

이번에 길고 긴 싸움을 하게 되서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는데, 역시 사태는 원점이다. 

왜일까?

길게는 생각하지 않고, 그만두려한다. 그만두려는 마음이 계속 잡히지 않아서, 아마 뒤척이는 모양이다.

 

1. 차별은 차별이라고 정확하게 문제제기하고, 또 헤이트스피치나 차별선동도 정확하게 문제제기 해야한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자꾸 '낙인'이라고 해선 안된다. 

연구나 담론을 통해서는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동의를 거의 얻지 못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을 하면서 반향을 살핀다. "그건 차별입니다." "그건 차별표현입니다." "그건 헤이트스피치예요." "그건 차별선동입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건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사태를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처럼 차별이 일상화되고 구조로 제도로 법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에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무엇인가 차별이다라고 하는건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하고, 단지 상대를 공격하고 낙인찍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또 그렇게 '차별이다'라고 문제제기 할 때도 차별이라는 걸 명확하게 하면서 차별 행위를 수행하는 주체에 따라 문제제기 방식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다.

 

즉 차별이라고 비판한다고 상대방의 인생을 끝장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뭔가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태가 차별이라는 걸 서로 인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변화의 계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미 한국에서는 차별표현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는데, 어떤 표현이 차별표현이다, 그 표현을 쓰지 않는게 좋다라고 한다고 그게 상대를 낙인찍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근데 한국에서는 이런 인식이 부족하니까, 그런 문제제기를 하면, 상당히 격하게 방어하고 부정하곤 한다.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차별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대해 비판받았을 때 인정하고 또 변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면 된다.

 

그런데 차별이 아니다라고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하는 게 그리고 그걸 집단적으로 성명서로 제출하는 게 차별이 아닐 수 있을까? 왜 그걸 자꾸 주관적이고 모호한, 입맛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혐오>로 맥락화하면서, 혐오가 아니다거나, 혐오라고 낙인찍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문제이고, 매번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성명서를 제출한 단체에 대해, 일단 그런 행동이 차별이라는 걸 명확하게 하는 건 중요하다. 그건 차별이고, 정확하게는 차별선동이다. 이에 대해서 학생 단체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는 구체적으로 면밀한 조사를 하여 여러 정황을 고려해서 교육과 제도적 대처를 해아햔다.

무엇보다 이런 차별선동이 일회적이고, '여학교'라는 여성공간에 대한 당사자로서 불안의 반영인가?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이거나 어떤 확신과 신념의 체계에 때른 행동인가

관련 단체들은 어떻게 연결되었고 그 연결은 일회적인지, 학생들 외에 이 차별선동과 관련된 집단, 인적 네트워크는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등등 매우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교육과 대응 방안이 제안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이런 사태가 차별이라는 건 명확하게 제시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차별이라고 명확하게 하는 게 단지 '낙인'효과가 아니라, 사태를 분명하게 하고 학생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오히려 필요하다는 점이 공식화되어야 한다. 

 

부산지역에서도 소수자 문제를 식당 메뉴판에 비유해서, 페미니즘이 비빕밥도 된장찌개도 김치찌개도 다 해줘야하냐는 주장을 '영페미'였던 분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했다. 여성단체장도 듣기 끔찍한 소수자 차별을 확신에 차서 반복하면서 이게 왜 차별이냐고 강변했다.

 

학생들이랑 수업을 하면서 느낀 건, 차별이라는 게 누구나 할 수 있고 공기와도 같다, 예를 들어 학력 차별 같이 '능력'으로 정당화되어서, 학력차별의 피해자들도 스스로 자기가 능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그런 문제 등을 자세하고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논의해가면, 일상에 깊숙하게 자리잡은 차별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게 차별이라고 비판하고 문제제기하는 게 공격이나 낙인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된다. 혐오라는 개념을 사용했을 때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차별을 사례로 비교해보면 이해를 쉽게 한다.

 

2. 이 사태를 혐오라고 보는 건 소수자 배제 운동이나 경향을 매우 소박하고 안이하게 보는 건데, 하물며 소수자 단체(차제연이나 인권단체,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조차 계속 그렇게 판단하니까, 내가 어쩔 수 없는 일.

소수자 배제 운동이 파시즘이라고 보는 것도 단지 생물학적 여성을 강조한다는 문제만이 아니다. 그들의 신념의 체계가 정말 문제인데.

 

현재 사태가 발생한 주요 지점 단체를 중심으로 몇년간 진행된 강연, 행사,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그들이 지금 뭉쳐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 방향의 위험성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조사와 관찰을 하느라, 너무 환멸에 빠질 것 같아, 다행히 칼럼도 그만두게 되어서 이 조사도 그만두었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민을 그만둔 것도 겹치는 이유지만.

 

3. 2와 관련되어, 페미니즘과 '여성이권단체'를 모호하게 뒤섞으면 안된다고 역시 오래 주장했으나, 역부족이고. 페미니즘이 아니고 페미니즘 이름의 여성이권단체가 세력화하면서 2를 필요로 전유하는 건, 이미 이프와 열다북스의 결합에서 시작되었는데, 이프 비판했더니, 그때 칼럼을 쓰던 매체에서 당장 이프 대표를 전면 인터뷰하고, 나를 잘랐지^^어차피 그 매체에 계속 쓰고 싶지 않았기에 잘되었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러고는 전혀 반성도 없이 래디컬을 비판하는 건...그런 건 이 동네에서 이유를 물어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되새김....

 

이제 자자.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왜 잠을 설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