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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성폭력과 음모론 본문
문단 성폭력 사건을 음모론으로 접근하면서 몽매를 질타하는 논의가 무성하다.
나름 꽤 열심을 부린 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탈냉전 시기 이후 성폭력을 다루는 방식은 거의 언제나 음모론이 지배적이었다. 그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간 이 음모론이 공식 자료로 기록으로 남은 건 별로 없는데.
2018년 음모론을 주장하는 담론 상황을 담은 자료도 공식 글로 나왔으니, 역사 기록 차원에서는 진전이라고 보아야 하나? 씁쓸하지만 말이다.
훗날 이 자료들이, <성폭력과 음모론의 관계, 아니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은 왜, 언제나, 항상 음모론으로 대체되는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되길 바란다.
몇번 마감 중이라고 알려드린 원고에서, 이에 대해 논의했다.
꽤 오래 붙들고 있던 화두이고, 성폭력을 비롯한 노예화와 음모론의 상관성, 즉 노예적 주체화가 음모론의 형식으로만 공론장에 나타나는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아직 역사적 지형도를 통해 이런 현상을 정확하게 규명할 필요를 제기하는 데서 머물고 있고, 계속 더 연구를 진전시켜야 한다.
최근 논의는 이 글에서 다루지 못했으나, 씁쓸하다.
**더 씁쓸한 것은 검찰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음모론이 부상하지 않는데, 문단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음모론이 강하게 부상하는 이 차별성이다. 이런 점이 노예적 주체화와 음모론의 특별한 연관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1994년 음모론과 재빠른 ‘수습’으로 봉합되었던 성노예화의 심연은 이렇게 또 다른 형태의 여성 살해로 귀환하였다.
1994년 살해 사건에서 성노예화는 음모론과 소문이라는 형태로 담론화 되었다면, 1998년 이후 성노예화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악플, 루머, 황색 저널의 선정적 보도 등의 형태로 담론화 되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오랫동안 문화산업 내의 성 착취에 대해 소문과 음모론이라는 담론 형태를 통해서만 가까스로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문과 음모론은 ‘사실’과 진실을 가리는 역할도 하지만, 성 착취에 대한 ‘리얼리즘 서사’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가까스로 진실을 보여주는 기능도 했다."
<여성 살해 위에 세워진 문학/비평과 문화산업>, 곧 나오는 글을 확인하세요^^
성착취에 대한 '리얼리즘의 불가능성'에 대해 다른 면에서 곱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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