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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신체이론/연결학과 고등교육

어떤 시위는 왜 이야기가 되지 못했을까?

alice11 2023. 9. 5. 12:57
어떤 시위는 왜 이야기가 되지 못했을까?
'3.1 운동'과 '4.19'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정치적 사건이지만, 거의 이야기가 되지 못했다. 왜일까?
많은 연구자들이 고민해왔지만 딱히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1987은 어떠하고
'이대 시위', 강남역 시위는 어떠할까?
미래 시제인 건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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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교직 수업을 하고 있지만, 초등 교육 현장이나 초등교사 양성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교권' 논의의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는 생각이고 학생 인권을 '인권 탈레반들의 소행'이라 지칭하며 비난하는 교사들의 글을 탐라에서도 만나게 되니, 슬픈 마음이 들어서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기를 바란다.
어제는 꽤 많은 이들이 "칼 각 데모 사진"을 인용하면서 교사 시위의 한계, 온건함, '계급성' 등을 논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역시 마음이 허하고 슬퍼졌다.
이 이미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걸 받아 쓴 언론들도 많다.
이번 시위 보도에서 한겨레는 이 이미지 자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또 '칼 각 시위' 장소인 서울 시위를 중심으로 보도 하지 않고, 지역 별 교사 시위 현장을 차분하게 사진과 취재로 담았다.
사진 속 '교권 보호'가 눈에 밟혔지만, 이런 보도 자체가 귀하다고 생각했다.
--교육 문제의 계급성을 지적하는 이들의 논의는 매번 한결같다.
정규직 교사의 계급성
그러니 비정규직, 학교 노동자 인권에 관심도 없던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서 나선 게 전형적인 계급적 태도이고 그래서 문제라는 지적들.
이런 연쇄는 이번 시위를 '이대 시위'의 판박이라는 논의로까지 비약한다.
어제가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는데. 한국에서 공교육 문제를 계급성의 관점에서 논의해온 이병곤 선생님이 번역한 <<위기의 학교>>를 인용해본다.
"지난 15년간 정부가 학교 교육에 개입해 온 정책들 대부분은 학생들의 학업 실패 원인이 학교에 있다는 비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가 본질적으로 잘못 설정된 것이라면, 교육 개혁의 구조 전체가 모두 오류에 빠지게 된다. (중략)
정치인들은 학교 실패의 원인을 교사와 학교 행정가들에게 떠넘김으로써, 중앙 정부가 져야 할 모든 책임을 면해주었다."
교육 문제에 대해 계급적 관점에서 대안을 제시하려면 무엇보다 교육 문제가 학교 문제가 아니라는 점, 또 교사와 학생 문제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교육의 계급성은 교사의 계급성과 그 한계를 비판하고, 그래서 교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논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교육과 계급성을 고민한 많은 이들이 왜 '학교 바깥'으로 나아갔는지 그 역사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사회를 바꿔야 교육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나도, 학교 관계자이건 아니건, 이런 사회의 일원인 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교사의 계급적 한계를 논하는 글들은 마치 교육의 계급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 같지만
실은 교육 문제를 사회 구조 변화가 아닌 '학교 책임, 학교 정책, 학교 관련 행위자들의 책임'으로 전가한 교육 정책 당국과 정치가들의 문제적 방식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제 오늘 계속 순환하고 있는 "칼 각 시위" 이미지와 거기 따라붙는 '교사들의 계급적 한계' 운운하는 '날카로운 비판'들은
교육의 계급성과 관련해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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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를 위에서 조망한 카메라 샷은 시위대의 규모와 인원을 측정하기 위해 오래 사용되었다.
이런 광학적optical 응시는 '시위'를 수로 환원하여, 측정값에 따라 의미 여부를 판결하는 기술의 하나이다.
가깝게는 민중총궐기와 일본의 3.11 이후 수상관저앞 시위에서도 시위대의 인원수 측정을 둘러싸고 경찰 측과 주최측이 공방을 벌인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런 사례를 지나면서 이런 카메라 샷이(누가 찍었느냐와 무관하게) '채증 샷'의 스펙타클을 반복한다는 비판도 이어졌고, 비판적인 미디어에서는 이런 채증 샷을 기사 이미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논의도 있었다.
(관련해서는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에서 자세하게 논하여 생략)
그러니 '칼각 시위' 이미지로 '시위 참여 교사들의 계급적 한계'를 논하는 현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오히려 한국의 '계급 담론'이 얼마나 무너져버렸는가 하는 그 처참한 모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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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 이후 시위 현장을 꽤 오래 만나왔다. 대부분 처음 시위에 나온 이들은 자신들이 여기 오게 된 사연을 말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다시 만나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소책자도 찍고 책도 만들고 영화도 찍었다.
시위는 끝났어도 그렇게 이야기는 이어진다.
칼 각 시위 문제, 정규직 교사들의 계급적 한계 같은 말들에 넘어지지 말고,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저도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