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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는 여기까지, 지방식민화의 정동 경제> 본문

연결신체이론/연결학과 고등교육

<너네는 여기까지, 지방식민화의 정동 경제>

alice11 2023. 11. 27. 13:38



1.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말은 이제 논쟁도 되지 않습니다. 강준만 선생이 이 선언을 했을 때는 학문적 논쟁이 되기도 했지요. 물론 지방을 단일한 통일체로 볼 수도 없습니다.

저는 주로 부산의 지방으로서의 특이성을 중심으로 고민하게 되기도 합니다. 지역 차별의 수혜자로서 부산은 '2대 도시'라는 명명에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오늘날 '2대 도시 부산'이라는 명명은 거의 사용되지도 않고, 그런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특히 지방 소멸 담론은 지방들 사이의 비균질성조차 균질화해버렸습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부울경은 산업자본주의의 메카였고, 오래된 산업이 지역의 기득권 세력을 이루면서 동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오래된 기득권과 바로 그 기득권이 걸림돌이 되어버리는 지역의 현실을 가장 잘보여주는 사례가 취업률, 특히 대졸 취업 문제입니다.

대졸 취업 문제는 단지 대학 졸업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대졸 취업 문제를 제기하면 비대졸 문제가 더 중요하다 이런 논란 속에서 부울경의 비대졸 청년 노동자를 지방 청년의 대표표상으로 전유하는 역학이 이미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2. 고등교육 정책의 식민성 혹은 고등교육 정책은 어떻게 식민화의 방법이 되나

일본 제국은 왜 조선에 고등교육 기관(대학 이상의 교육제도)를 만드는 걸 그토록 억압했나? 또 왜 조선지식인은 고등교육 기관 만들기에 그토록 절박했나?

일본 제국은 조선에 의무 교육을 실행하지 않으면서 조선의 위치를 '딱 거기까지'로 지정했고, 마찬가지로 실업 중심 교육을 근간으로 하면서 식민지의 고등교육을 근원에서 부정했습니다.

조선인들은 "딱 거기까지"인 것이지요.

2023년 한국의 고등교육 정책이 과연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특히 지방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전형적인 식민화 정책이자 방법이 되어 왔습니다.

3. 산업수요맞춤형 인재 양성 정책과 "딱 거기까지'인 지방대

제가 여러 자리에서 강조했듯이 산업수요맞춤형 인재 양성 정책은 낙후된 산업만 포진해있는 지방의 상황을 전혀 변화도 개선도 하지 않고, 그 책임을 지방대에 떠넘깁니다. (취업률 기반 대학 평가)

그 뿐 아니라 지방대 교육을 지방의 낙후한 산업 수요에 만추도록 강제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지방에서의 인재 양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지방대에서는 그 지방에 있는 취업처(대부분 낙후된 산업인)에 억지로 맞춰서 "거기까지", "그 정도 선에서" 타협하도록 강제합니다.

4. 이십여년간 미스매치가 키워드인 지방대 취업문제
그래서 부산 지역 대졸 청년 취업 문제는 이십여년간 계속 "미스매치' 해소에 매달려왔습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지방에 없고, 대학은 청년들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에 청년들을 타협해서 안주하도록 온갖 유인책을 고안하게 합니다. 아니면 창업을 하게 만들죠.

당연히 학생들은 이런 취업을 강제하는 대학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취업 정책이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지방을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 됩니다.

"남은 자는 적당히 타협한 사람들, 떠난 자는 성공한 자"라는 도식이 생겨버렸습니다.

5. 존엄과 주권을 재생산하는 터전과 기반의 상실: '여기까지'라는 자기 모멸을 재생산하도록 강제되는 지방대

이런 과정에서 지방대는 기존의 역할, 즉 지역의 존엄과 주권을 재생산하는 터전과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박탈당했습니다.

오늘날 지방대는 모두가 "여기까지'라는 강제된 타협, 강제된 모멸감을 재생산하는 터전이 되어버렸습니다.

5. 강제된 타협과 강제된 모멸감의 내부적 전도와 정당화로서 인문사회대 구조조정

부울경 지역에서 대학에 인문대가 온전히 남아있는 대학은 몇몇 국립대 뿐입니다. 제가 부산에 왔을 즈음만 해도 그 당시 지방대는 말 그대로 "짱짱한 기운"이 서려있었습니다.

외지인, 서울내기를 곱지 않게 바라보고,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그 짱짱함은 단지 배타성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동화되기를 거부하면서 지역의 존엄과 주권을 지켜낸 자존심이자 힘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났던 선생님들, 학생들의 모습은 오늘날 추억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지방대의 인문사회과학이야말로 이러한 존엄과 주권의 터전이자 재생산 기반이었습니다.

지방대의 인문사회과학은 서울과의 비동일화와 지방의 주권의 거점이자 그런 인력과 지식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터전입니다.

산업수요맞춤형 인재양성 정책은 지방대에서 바로 그 거점과 터전을 말살하고, 대신 이미 구성된 낡은 기득권의 부스러기를 중앙정부에서 받아서 현상유지를 하는 타협적이고, 중앙 정부에 기생하는 협력적 행위자를 지방대의 중심에 세우는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6. 디지털 혁신의 역설과 산업수요맞춤형 고등 교육 모델의 종말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혁신과 고등교육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한국에서는 디지털 혁신이 '기술 보국'을 외친 박정희 시대 산업화 세력의 논리와 거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특히 지방대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유는 부울경 지역의 경우 중앙정부 협력 세력들이 대체로 산업화 시대의 낡은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혁신에 따른 고등교육 정책 변화에 대한 논의는 디지털 혁신이 '역설적으로' 고등교육에서의 직업 교육이 이제는 불필요한 시대를 만들었다는 점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디지털 혁신이란 다른 말로 하면 직업 교육의 종말, 좁게는 그간의 산업수요맞춤형 인재양성 정책 패러다임의 폐기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그간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에서 하던 고급 지식 해석력 교육을 학부 교육 전체에서 실시하는 방향으로 고등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방대 정책은 과연 어떤지.

 

2023 11월 27일 동아대 인문학 콘서트에서 할 이야기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