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29 00:00:00
연세대 강사·국문학
일국 단위의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전지구적 자본주의로의 변화를 제국이라는 새로운, 그러나 오래된 패러다임으로 재해석한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제국의 ‘심장’ 미국을 향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무장 투쟁을 일종의 ‘절멸의 공포’에 대항한 투쟁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자본주의적 메커니즘 속에서 소위 싹쓸이의 위협에 놓인 모든 존재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이제 선택은 절멸이냐 흡수 통합이냐라는 두 가지 뿐인 것이다. 그만큼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시대에 존재 위기는 극단의 상태로 치달아가고 있다.
이제는 착취를 넘어선 절멸의 공포가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이다.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바라보는 입장들은 다양하지만 어쨌든 CNN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차마 입 밖에 꺼내 말하기는 민망한 심정은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다. 난민의 참상과 고통은 안타깝지만 어쨌든 ‘남의 일’이니 말이다. 피바다가 되는 그리스 비극을 보고 사람들이 연민과 공포로부터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되는 메커니즘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최종적으로는 나는 안전하다는 이 느낌.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타자에 대한 이해
그런데 왠지 이 느낌이 낯설지 않은 것은 왜일까. 소위 IMF 사태로 무수한 사람들이 정리 해고, 퇴출될 때 근심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으나 언제나 백수였던 필자 같은 집단의 사람들은 어쨌든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부 꽤나 했고 나름대로 의식도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 소위 강사들이 모여서 나도 정리해고 한 번 당해봤으면 하는 우스개까지 나돌기도 했다.
우리가 아프카니스탄 난민을 보고 아무리 연민의 정과 애정의 성금을 보낸다 해도 그들이 겪는 절멸의 공포를 내 일처럼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입장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미국 중심의 이해가 판을 쳐서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진정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매일매일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교수와 강사 사이
대량 실업 사태를 보면서 우리도 정리 해고 한 번 당해봤으면 하고 생각하는 집단들은 결코 의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현실적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고용 노동자와 비고용 노동자 사이에 해소불가능한 차이와 격차를 깊이 새겨놓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연대의 관계가 정립될 수 있는가 아니면 원한과 증오의 벽이 쌓일 것인가 하는 것이 노동 착취에 대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장 관건이 되는 사안일 것이다.
교수 노조 설립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강사라는 입장 속에서 교수 노조를 바라 볼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교수 노조가 결국 대학에 고용된 노동자인 교수들의 권리 유지 기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교수 노조가 비고용 노동자들인 강사들의 권위를 위해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교수라는 입장에서 강사들이 느끼는 절멸에 대한 공포를 과연 내 일처럼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결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교수되면 강사 시절 다 잊는다는 속설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은 점점 더 악화되는 강사들의 처지에 대해서 교수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로 희박해져 간다는 점이다. 대학 강사들의 현 상태에 대해 절멸의 공포 운운하는 것이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다.
파행적인 강사제도
물론 강사도 나름이어서 소위 강사 재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강사들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이제는 너무 식상한 말이지만 강사를 일용 잡급 수준으로 취급하는 대학 당국의 부당한 처우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외국인 강사들과는 매년 계약서라는 것도 쓰고 의료 보험 혜택도 주면서 내국인 강사들에게는 “왠 계약서? 무슨 의료 보험?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리는 한국 대학의 행태는 요즘 유행하는 민족주의 담론 연구에서 한 번 연구해 볼 만한 기현상 중 하나일 것이다. 대학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요즘 유행하는 전담 강사라는 것도 대졸 학력의 초임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책정하면서 마치 선심이나 쓰듯이 강사들을 부려먹는 제도의 하나이다.
이러한 파행적인 강사 제도로 인해 강사 집단들은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쓸모 없는 인간이 된다는 자책감과 하루하루가 모멸감과 그로 인한 원한의 감정을 쌓아가는 삶이 돼버린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이들이 하루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살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삶, 이것이 하루하루 절멸의 공포를 맛보며 사는 삶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