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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2002

alice11 2018. 10. 29. 20:34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075
<교수신문>
교수신문에 '비정규직 연구자' 칼럼으로 연재했던 글 몇편을 우연히 찾아서, 모아둠.
[문화비평] ‘놀박’들의 처절한 연대기
  •  권명아 연세대
  •  승인 2002.11.09 00:00
  •  댓글 0

2002-11-09 13:18:26
권명아/연세대 강사, 국문학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요즘 세상에 얼어붙는 것이 날씨만은 아니어서 심리적인 수은주의 하강을 운운하는 것이 좀 진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나타난 불청객 마냥 갑작스레 찾아온 겨울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위축감은 아마도 벌써 한해가 끝났다는 ‘종말’에 대한 예감과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나 하는 허탈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2002년은 공식적으로는 월드컵의 해였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에게 2002년의 의미는 공식적 기억과 개인적 기억들이 교차하면서 구성될 것이다. 이른바 지식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도 2002년의 의미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유행하는 새로운 호명법에 따르자면 ‘놀박’들(노는 박사들)에게 2002년은 ‘학진 프로젝트’의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사상 최대 규모의 학진 프로젝트 열풍’은 봄부터 시작돼 여름을 지나 가을 언저리에서야 한 고비를 넘겼다. 일부 그룹들은 ‘열매’를 얻었고, 일부는 여전히 대기 중이다. 박사 학위 취득자의 실업률 증가와 이에 따른 심리적 체감 온도 저하, 국가 기관의 ‘실업’ 연구자 구제책이 맞물리면서 진행된 것도 벌써 여러 해가 됐다. 

연구자들의 경제 감각에서는 가히 ‘천문학적’ 액수가 걸린 연구 지원 프로젝트가 속출하면서 ‘놀박’들 안에서는 이러한 국가의 연구 지원에 ‘목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피력되곤 했다. 연구 지원 사업이 ‘놀박’들의 막막한 미래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하고 생계에 대한 불안감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임시 방편책이거나 ‘당근’일 뿐이라는 것이 연구자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임시방편에라도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실직 연구자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현재 ‘놀박’에 대한 연구 지원은 연구자의 신분 안정(보장)과 연구 지원금 관리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위해 대학 연구 기관이나 대학 소속 교원(교수) 책임 아래의 연구 프로젝트에 소속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놀박’들의 신분 안정을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오히려 연구자들이 연구 지원 사업 시스템 아래서 연구 주체로 간주되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현재의 지식 생산이 많은 부분 실직 연구자들의 학문적 열정과 의지로 지탱되고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연구 지원 시스템은 실직 연구자들을 주체적인 연구자가 아니라 ‘후속 세대’로 폄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올 한해 ‘학진 열풍’이 연구자들의 이합집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 것에서도 확인된다. ‘놀박’들은 자신의 주체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서 국가의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대학 기관, 대학 소속 연구자(교수)의 관리와 지도, 편달의 시스템으로 들어감으로써만 ‘구제’될 수 있는 것이다. 

좀더 중요한 문제는 올해의 학진 프로젝트 열풍 ‘이후’의 현상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놀박’들 사이의 세분화된 차별화와 서열화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박사 취득자의 실업률 증가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고, 역설적이지만 그 때문에 ‘놀박’들 사이에는 일정한 심리적 연대감이 형성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진 열풍 이후 이러한 심리적 연대감에 뚜렷한 균열이 감지된다. ‘놀박’들은 이제 프로젝트가 된 ‘놀박’과 프로젝트도 못하는 ‘놀박’으로 나뉘고, 프로젝트를 하는 ‘놀박’들도 3년짜리, 2년짜리, 1년짜리, 연봉 2천4백짜리와 2천짜리 등으로 차별화가 되고 소속 기관의 처우에 따라 심리적 안정감과 불만감의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공통의 고민거리와 불만을 공유하지 못하고 따라서 연대의 감정도 상호간의 연민과 배려의 통로도 갖지 못한 채 ‘놀박’들 내의 위계화된 구별에 따라 경쟁적 관계로 돌입하게 됐다. 

물론, 원래는 강고했던 ‘놀박’들의 연대의식이 학진 열풍 때문에 해체된 것처럼 과잉 해석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실상 실직 연구자들이 자신들을 희화화하는 ‘놀박’이란 이름에는 교수가 되기를 기다리는 대기자 신분에서 학진 프로젝트 수혜를 기다리는 신분으로 바뀌었을 뿐인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자조의 흔적이 강하게 배어있다. 그러나 교수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현실에서 실직 연구자들의 나름의 연대 의식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연구자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실낱같은 희망이기도 했다. 연구자 공동체나 연대 의식을 논하는 것이 이제는 한낱 순진한 낭만적 발상이 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추위는 계속될 것이고 봄소식은 언제 들려올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실직 연구자들이 막막한 미래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을 견뎌내는 작은 힘은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따듯한 배려와 심리적 연대감에서 나오지 않을까. 다소 심정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 이 밤 어디선가 추운 길을 서성이고 있을 많은 당신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을 되뇌어 본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