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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젠더화된 고용유연화는 어떻게 "지방소멸" 정책이 되었나 본문
힐링 여행의 아포칼립스와 정착민 식민주의의 정동들(요약 소개 2)
대중서사연구, 대중서사학회, 2024, 30권 2호 발간 예정
지방 소멸 담론은 지방을 '구제'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방을 소멸시키는 정책이다.
이 과정은 한국의 인구 정책이 인구를 소멸시키는 결과/효과를 유발하고, 청년 일자리 정책이 청년 일자리를 유연화하고, 여성 정책이 여성차별을 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성차별, 인종차별, 장애 차별, 연령 차별 등 모든 차별의 집합체이다.
<논문 인용>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로 나눈 값으로 계산된다. 이런 계산법은 이미 젠더화 되어 있고 인종화 되어 있다. 즉 생산 인구를 65세 이하 비장애 남성으로 규정하고 재생산 인구(가임 여성)와 비생산 인구(고령 인구)의 비율에 따라 소멸 지표를 측정한다. 지방소멸 지표 자체가 성차, 연령 차이, 장애 여부, 정상성의 기준과 인종(이 지표에 인종적 소수자 자체는 측정값으로 계산되지 않는다.)을 위계화하고 생산성이라는 가치에 따라 배치하는 측정법의 산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한 가임기 여성지도 제작은 한국 정부가 재생산 정책을 어떻게 젠더화 되고 인종화 된 인구 통계학으로 환원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중략)
“가임기 여성지도”는 폐기되었지만, 지방소멸위험지수로 형태를 달리해서 계승되었다. 흥미롭게도 지방소멸위험지수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이 없었고 오히려 소멸 공포를 효율적으로 자극했다.
(중략)
지방소멸위험지수는 청년의 지역 이탈에 주목하면서 지역 일자리 문제로, 인구 감소에 주목하면서는 지역 여성(가임 인구)의 이탈 문제로 이전되었다. 지역 일자리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기에 여성 일자리 자체가 거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지방소멸위험 논의 자체가 이미 젠더 차별적이며 남성화된 생산력 중심 이념 체제의 산물이기에 이에 따른 보완책 역시 기존의 지방소멸에 대한 프레임을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략)
한국 사회가 청년 인구의 수도권 쏠림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이다. 이 현상의 이면에는 2014년 전후로 가속화된 청년 일자리 문제가 놓여있다. 청년 실업은 한국 사회 전반의 심각한 문제이고 대기업이 청년 일자리를 비정규직화하고, 고용 자체를 줄이면서 촉발되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시대”의 산물이다. 게다가 정부의 공공부문 중심 청년 일자리 정책이 거듭 실패하고 기업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공전해왔다.
(중략)
즉 청년 실업 문제는 고용 유연화의 젠더화에 따른 결과이며 지방 청년 유출 문제는 이러한 젠더화 된 고용 유연화를 지방 문제로 전가한 결과이다. 즉 국가, 기업, 정부, 정당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청년에게 전가하고, 지방 문제로 전가한 것이다.
다른 한편 고용 없는 성장 시대는 이른바 글로벌 경제에 대한 환상이 붕괴하고, 실제적으로도 글로벌 경제를 통한 탈출구가 봉쇄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이른바 신냉전 질서가 공고해지는 시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한국 사회는 낡은 냉전 섬에 다시 갇혀버렸다. 2010년대의 신조어로 기록된 “헬조선” 담론은 수저계급론으로 이어졌다. “헬조선”이 2010년대 한국사회의 징후를 보여준다면 지방소멸 담론은 2020년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헬조선”과 “지방소멸” 사이에는 특이한 연속과 단절이 있다.
“헬조선”에서는 한국 전체가 미래도 없고, 가망도 없으며 ‘이민만이 답’인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반면 “지방소멸” 담론에서는 헬조선의 표상 전체가 지방으로 이전되었다. (중략)
지방소멸 담론에서는 이민, 조기유학, 이중 국적 등 다양한 형태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국외 탈출의 경로’가 비가시화 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울과 지방을 극단적으로 대비해서 이동 경로를 구축한 것이 지방소멸 담론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이다.
한국을 탈출한 자들만이 ‘성공 그룹’이 될 수 있었던 헬조선 담론과 비교해서 지방소멸 담론에서는 서울로 탈출한 자들이 ‘성공 그룹’이 된다. 물론 이는 한편으로는 서울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극심해지는 새로운 상황의 반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2010년대에 비해 2020년대에는 조기 유학, 이민으로 상징되는 한국 탈출의 경로가 더 이상 유토피아를 향한 출국이라는 희망으로 여겨지는 않는 현실적 상황, 즉 국외로의 이주 자체도 봉쇄된 상황과 관련이 깊다.
(중략)
즉 지방소멸 담론은 짧게는 1990년대에서 2020년대에 이르는 전지구적인 권역적 귀속(regional belonging)의 변화, 권역적 귀속의 경계 변화에 따른 일국 단위의 이동과 편입 방식의 변화, 이와 연계된 일국 내의 경계의 재배치와 이동 등에 따른 권역, 국가, 지역과 관련한 이념 변화의 산물이다. 나아가 지방소멸 담론은 궁극적으로는 지방을 둘러싼 이념, 가치, 경제적 할당, 역할 부여, 정동 경제 등의 복합적인 의미 형성 기제의 산물이다. 즉 지방이 만들어져온 역사와 의미화 과정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지방소멸에 대해 논하는 것은 지방을 소멸로 이끈 지방 이념 자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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