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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경제 가치의 쇠락과 페미니즘 정치의 새로운 출발

alice11 2022. 1. 3. 12:18

주목경제 가치의 쇠락과 페미니즘 정치의 새로운 출발

1. 다른 삶을 향한 힘들, 그리고 나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페미니즘에서 시작해서 언제부터 페미니스트가 되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오래된 사람^^;;)
내 또래 많은 여성 필자들이 90년대 대거 등장했고, 나도 그런 시대의 힘에 올라타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30대부터 방송이나 신문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왔다.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널리 퍼졌을 때 페미니즘이 뭐 지금부터 시작했나 역사를 알아야지 하는 마음도 강했다.
10년이 넘게 보내온 직장에서 학생들을 보면서 "아니 내가 십 년 넘게 가르쳤어도 큰 변화를 만들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사람들이 이렇게 바뀌었지?" 누구에게 하는 지 모를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다른 삶을 향한 열정 혹은 힘들은 '역사적'이지만 사실 그 역사가 꼭 '나의 역사'는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만, 그 역사가 나의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2. 새로운 힘들에 주목하는 권력들: 반페미니즘 코인에 집중하는 시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어느 시대보다 이 새로운 힘에 대한 주목이 강렬한 시대였다. 대통령도 페미니스트임을 표방해야만 했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미투와 권력형 성폭력, 보궐선거 시기를 지나 반페미니즘이 시대 정신이 되었다. 반페미니즘의 힘이 강해졌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반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목 경제가 이미 형성되었고 권력의 타겟이 반페미니즘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공공연하게 반페미니즘을 선언해야 하는 시대
선거를 위해서 '반페미니즘 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대
반페미니즘이 주목 경제의 새로운 코인이 되어버린 시대
이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페미니즘 코인이 핵심인 시대가 되었다.
트위터에 페미니즘 타래를 생중계하던 미디어는 이제 반페미니즘 코인 시장을 생중계한다.
(온라인 페미니즘을 생중계하던 시대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여러모로 활발했던 걸 지금 맥락에서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페미니즘이 '정치적 올바름'으로 환원될 수 없지만 온라인 페미니즘 사이트에서의 차별적 논의는 그때도 지금도 내외적으로 비판과 자기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차별선동의 글로 가득채워진 반페미니즘 커뮤니티 글들이 "여론"이 되고, 대통령의 행보를 좌우하고 버젓이 기사화되는 게 지금 현실이다. 여기에 대해 어떤 문제제기도 되지 않는 게 오늘 한국사회이기도 하다.)
3. 관종 시대의 종말과 페미니즘 정치의 시작
 
 
오늘 신지예씨가 사퇴했다. 누구나 사퇴가 형식임을 알고 있다. 본인은 여전히 윤석열 후보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명하고 있다. 안타깝다. 신지예씨가 책임져야 할 일이 많고 이 경솔함과 조급함, 그리고 이조차 "주목받고 있는 일"(여성신문 1월 2일자 인터뷰)로 생각하고 있는 그의 속내가 참으로 주목경제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신지예씨 개인의 행보와 무관하게 이미 페미니즘이 주목경제 창출의 핫한 코인이 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반페미니즘 코인이 앞으로 선거를 내내 지배할 것이고 이 시대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신지예씨가 페미니즘 정치에 주는 귀한 교훈이다. 나아가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이어지면서 페미니즘 세력 내에서 더민주나 국힘이나 다 마찬가지다라거나 신지예씨처럼 더민주보다 국힘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흐름도 꽤 존재했다.
신지예씨가 국힘에 합류한 건 자의이지만 사퇴는 자의만은 아니다.
국힘이 20대, 여성, 페미니즘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똑똑하게 봐야한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그간 더민주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에 정말 치가 떨리도록 환멸만을 안고 혹시 국힘에서는 뭔가 가능할까, 그래도 이해 당사자가 많지 않으니 권력형 성폭력 문제 해결에 뭔가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수년간 페미니스트들을 휘감았던 '혹시'라는 질문을 떨쳐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해서도 꽤 오래 페미니즘 세력 내에 자리잡은 환멸과 질문이었다.
 
 
 
4. 페미니즘 정치의 시작, 다시 삶으로부터.
오래된 사람의 낙관이라 할 지 모르겠으나, 어떤 점에서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확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힘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어났지만, 이를 주목경제로 전유하고 소모하는 권력들과 행위자들은 이를 소진하고 내팽겨쳐버린다. 물론 페미니즘이 더 큰 힘이 되기 위해 이런 권력을 페미니즘적으로 재구축하는 건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 권력을 접수해서 '진보'를 구축한다는 민주화세대의 진보 정치의 종말에서 우리는 환멸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정치의 다른 길에 대한 고민의 단초를 얻어야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꿘충"이 멸칭이 되어버렸다는 건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이제 페미니즘이야말로 '운동권'이 되어야 할 시대이다.
'페미니즘 운동권'은 멸칭이 되었으나 사실 그 실체는 모호하고 흐릿하다.
어찌 보면 페미니즘은 '재야'의 길고 긴 시간보다 아주 일찍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길에 나섰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런 시대였고 시대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한 시대의 시대정신이 되었으나 여전히 우리 삶에서 페미니즘은 낯설고 설익은 '개념'이다.
삶 속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해야 할 일은 태산같다.
다시 삶으로부터.
페미니즘 정치가 시작할 지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