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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컬을 다시 질문한다>(이하 포럼) 후기 1

alice11 2021. 9. 1. 09:05

 

<왜 자꾸 비판하나? 왜 자꾸 다른 목소리를 내나?>

 

<<여자떼 공포, 젠더어펙트>>(2019) 출간당시, 온통 래디컬 vs 교차성으로 나뉜 페미니즘 담론장이 너무 답답했다. 페미니즘 역사, 이론, 실천의 길고도 복잡하고 다채로운 결들이 고작 두 이름으로 구획되는 게 사실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당시 교차성의 이름으로 자기정체화하는 집단적 흐름이 강해지면서 페미니스트들은 둘 중 하나에 서야했다. 당시 이런 집단적 흐름에 대해 이 책에서 강하게 비판했는데, 래디컬을 옹호하는 논의라는 근거없는 공격을 받았다.

아마 이 글들도 그런 공격을 받고 진영 논리 속으로 휩쓸려버리리라. 그러면 입다물고 있지 왜 또 쓰나....

페미니즘 내의 차이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는 포럼 여는 글의 취지는 또다른 차이들에 대해서는 과연 열려있는가? 그렇지도 않은게 문제다. 그래서 자꾸 말을 이어간다. 어차피 <<여자떼 공포>>이후 이런 식의 공격에 이미 휘말려서 이제와서 뭐 달라지지 않기도 하고.

포럼 토론에서 참가자들이 "왜 이렇게 페미니즘이 래디컬과 교차성으로 양분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자꾸 질문하시던데, 그 자리 참가자분들이 이렇게 잘 모르겠다고 질문하실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그 질문을 그 자리에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다.

 

<래디컬의 경계와 논의 대상: 라벨링을 경계하기 위해서 비판 대상을 구체화해야 하지 않나?>

 

물론 본인들을 래디컬이라고 부르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이 탐라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사실 '그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일화된 집단적 존재의 물질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구체적으로 대상을 규정해서 비판을 구체화하는 건 쉽지 않다.

연구란 관점만이 아니라, 대상의 물질성과 구체성에도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래디컬 비판'이라는 '관점'이 항상 '래디컬은 무엇인가'라는 원점으로 회귀되는 이유이다.

더구나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 나쁜 페미니즘=래디컬이라는 라벨링이 만들어졌고, 극단주의를 분리하자는 반페미니즘 수사는 여기서 완성되고 실현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비판이 이와 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래디컬 페미니즘을 '라벨링'의 방식으로 인용하고 사용하는 반복을 벗어나야 한다.

포럼 발표에서 발표자에 따라 '래디컬'의 범위는 사실 구체적 논의 대상으로 들어가면 아주 다르고 동일한 집단으로 규정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들을 '래디컬'이라고 동일화해서 비판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논의의 선명성과 이슈의 강도를 높이거나, 래디컬과 교차성이라는 예의 이원화된 진영론을 반복하는 것 말고 어떤 효과가 있을까.

 

1. 김보명 선생 발표에서 래디컬은 논의 대상으로는 '워마드'에 가깝지만(메갈과 워마드의 분리를 강조), 발표문에서도 10대~20대 여성, 대중, 온라인 페미니즘 등을 광범하게 지칭하고 있다.

발표에서 래디컬이라는 '대상'보다 그 '효과'에 집중하겠다고도 하셨다.

2. 루인 선생 발표에서 래디컬은 미국과 유럽에서 70년대 부상한 레즈비언 분리주의 그룹과 그 현재형이다. 한국에서 이는 특정 인물과 집단을 중심으로 부상한 자칭 터프그룹과도 일치한다. 루인 선생은 레즈비언 분리주의 역사와 현재를 트랜스 페미니즘과의 갈등과 대립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경계를 둘러싼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의 역사적 대립과 자기동일성의 한계'로 비판. 트랜스 페미니즘으로의 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트랜스 젠더 당사자성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페미니즘을 트랜스할 필요성으로 제기. 포럼 발표 중 래디컬의 대상이 가장 구체적이고 진단, 해석, 전망 역시 명확했다. 다른 발표자들과 공통된 키워드는 사실 별로 없었다. 다른 발표자들이 거의 '래디컬=대중성=10/20대 여성=온라인 페미니즘=신자유주의 문제'라는 도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논의 지형이라 하겠다.

3. 전의령 선생은 미국과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한국의 래디컬의 인종주의 페미니즘과 비교. 서구/비서구 페미니즘이라는 구별이 의미가 없음을 지적.

4.엄혜진 선생은 래디컬을 신자유주의 속물화와 비관주의의 산물로 규정

5. 김주희 선생은 래디컬을 위안부 액티비즘의 대중화, 페미니즘의 대중화라는 두가지 중요한 지점의 등장으로 규정. 소녀상 운동, 이대집회, 혜화역 집회를 자기동일성, 배제, 대중성, 다수성에 동일화된 20대 여성의 특성으로 규정.

6. 김현미 선생은 래디컬을 규정하지 않았고, 가부장적 미래주의에 대한 논의를 주로 함.

이처럼 논의에서 래디컬의 대상, 범위는 서로 거의 일치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운동, 집단이기도 함. 워마드와 위안부 운동, 이대 집회와 난민 반대 시위를 같은 층위로 '래디컬'로 규정해도 좋은지 의문임.

스스로를 래디컬로 정체화하는 그룹 내에서도 이러한 이질성과 차이를 구체화함으로써 오히려 래디컬이라는 라벨링을 넘어서는 비판과 차이화 효과(젠더 분석)에 이를 수 있지 않을지.

 

이는 현장의 '유일한 래디컬'인 이가현 감독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나타난 흥미로운 균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