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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과 반시설의 경계 본문

살갗:가족 로망스/반려의 권리

탈시설과 반시설의 경계

alice11 2017. 1. 26. 16:05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0569




[분석] 시설 소유 체험홈·그룹홈, 탈시설의 한 형태인가? 반영구 시설인가?
중증·경증 장애인 분리 수용하는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어
등록일 [ 2017년01월25일 13시43분 ]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시설 수용의 문제를 규탄하며, 서울시에 제대로 된 탈시설 정책을 촉구하는 모습.

최근 장애인거주시설이 빠르게 자립생활 모델을 도입해 시설의 개혁에 나서고 있다. 가정화된 시설, 체험홈과 그룹홈을 늘리면서 시설 거주인과 지역사회의 거리를 좁히고 거주인의 자기 결정권도 충분히 보장하는 형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산하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재단이 소유한 체험홈은 49개소(2014년 기준), 그룹홈은 31개소(2016년 기준)였다.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도 여러 정책을 통해 시설의 소규모화를 통한 자립생활 방안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기존 시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탈시설에 나선다면 지금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과연 이런 시설의 소규모화 정책이 장애계가 그동안 요구해 온 탈시설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최근 끊이지 않고 있다.
 

자립생활 명목으로 확대된 그룹홈·체험홈, 경증장애인 반영구 시설로 굳어져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가 2015년 발간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자립생활지원 매뉴얼'에 제시된 거주시설의 자립생활 환경 구축 원칙. 소규모 시설, 지역사회 통합, 개인 중심 공간, 이용자 선택권 등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 서부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인 ㄱ 시설은 자립생활 지원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체험홈과 그룹홈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왔다. 현재 10개의 체험홈을 시설이 직접 소유하며, 체험홈 거주인들은 시설 거주인 자격을 그대로 유지한다. 6개의 그룹홈은 재단이 소유한 1개 시설로 취급되며, 그룹홈 거주인은 시설 퇴소 후 그룹홈 측과 별도의 이용계약을 맺고 있다.
 

ㄱ 시설 측은 시설 거주인의 자립생활 의지와 능력, 생활재활교사의 소견 등을 고려해 서비스 지원 심사를 거친다. 이후 자립생활 능력이 높으면 그룹홈, 상대적으로 낮으면 체험홈으로 시설 거주인을 전원한다. 다만 거주인 중 도전행동이 있어 지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시설에 잔류시키고 있다.
 

시설 종사자 및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그룹홈에 거주했던 A 씨에 따르면, 그룹홈 거주인들은 본 시설과 달리 자신의 일정을 직접 관리하며, 시설 측이 정한 별도의 규정은 없었다. 그룹홈, 체험홈 거주인의 생활 만족도가 시설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ㄱ 시설은 그룹홈, 체험홈에서 완전 자립으로 이행이 더뎌, 그룹홈, 체험홈이 사실상 반영구적인 주거가 됐다. 시설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자립에 성공한 인원은 6명뿐이었다. 서울시 자료를 봐도 2011년부터 2016년 5월까지 5년간 ㄱ 시설 체험홈에 입주한 거주인 11명 중 1명만 자립했다. 이들 거주인의 평균 거주기간은 46.6개월이었다.
 

이에 더해 그룹홈과 체험홈은 경증장애인 시설, 시설 본원은 중증장애인 시설로 분화되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 시설 측 종사자는 ㄱ 시설이 다른 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증인 장애인들도 자립생활을 지원한다고 했으나, 경증 장애인에게 자립생활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인정했다. 종사자는 “시설 거주인 자립을 100% 할 수는 없다. 아무 것도 못 하는데 자립을 원하는 거주인을 지원하기는 어렵다.”라며 “보조 인력의 부족으로 그룹홈, 체험홈에 자립생활 훈련이 가능한 경증 장애인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A 씨의 경우 금전적인 계약 외에는 거의 일상생활 보조가 필요하지 않았고, 14년간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갖고 있다. 언제 자립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A 씨가 지역사회로 독립하기까지는 무려 1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ㄱ 시설과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ㅇ 센터 활동가는 “대체로 거주인들이 시설에서 그룹홈, 체험홈으로 한 번 나오면 목표 없이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간다. ㄱ 시설 또한 아무리 자립 계획을 잘 세우고 있다고 해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며 “그룹홈, 체험홈 거주인들을 순환시켜서 자립 훈련을 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서는 말만 체험홈, 그룹홈이지 지역에 나와 있는 또 다른 거주시설밖에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매뉴얼(2015)에서 소개한 실제 가정형 시설의 외부와 내부 모습.

밤에 잠만 자고 시설로 '출퇴근'하는 체험홈, 시설과 무슨 차이?
 

서울 남부에 있는 ㄴ 시설은 서울시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 3개의 체험홈을 소유하고 있으나, 운영 방식은 형식적이었다. 체험홈 거주인들은 시설 직원들의 인솔을 받아 오전 7시 ㄴ 시설로 들어와 아침 식사를 한 뒤, 낮 동안에는 시설 내부 보호작업장에서 주어진 일을 한다. 작업이 끝나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체험홈으로 들어와 잠을 잔다.
 

오히려 ㄴ 시설이 체험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거주인들의 자립생활을 막아서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2014년 경 거주인 B 씨는 한 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조력을 받아 서울시복지재단이 제공하는 자립생활주택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원장은 ㄴ 시설 내에도 체험홈이 있는데 굳이 자립생활주택으로 이주하려 한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B 씨가 자립생활주택 이주를 강하게 희망하자 평소에는 연락도 되지 않던 가족들을 동원해 B 씨를 눌러 앉히려 했다. 다른 주거를 선택하려는 B 씨의 의지는 안중에도 없었던 셈이다.
 

B 씨를 지원했던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체험홈의 주간 활동은 당사자의 욕구에 기반해 근처 지역사회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원장은 오히려 시설에 사람들을 더 수용하고자 하는 편법으로 체험홈을 이용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침해 시설 유지하기 위해 자립생활 이미지만 가져다 쓰는 시설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마리스타의 집은 그룹홈, 체험홈을 직접 소유하고 있지는 않으나, 최근 소규모 가정형 시설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마리스타의 집이 19일 밝힌 거주인간 성폭력 사건에 따른 쇄신안을 보면, 기존에 수용하던 지적장애인들을 가정 복귀 또는 전원 조치하고 25명 규모의 중증 와상장애인 거주시설로 시설을 개편할 예정이다.
 

마리스타의 집은 일상생활지원 서비스와 거주인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취지로 가정화된 생활관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생활관을 1인실 5개, 2인실 4개, 3인실 3개, 5인실 1개로 나누고, 거주인에게 자립생활 훈련과 독립적인 주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자립생활이라 부르기는 무리가 있다. 우선 시설 자체가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고, 시설 측 준비사항을 보더라도 기저귀, 의료용 흡입기, 산소공급기, 위장관 등 의료용 기기와 작업치료, 물리치료, 언어치료 등 치료 계획에 편중되어 있을 뿐이다. 정작 지역사회 자립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혀 없다.
 

물론 마리스타의 집은 기존 지적장애 거주인 39명 중 34명을 시설 밖으로 내보내긴 했다. 기존 지적장애 거주인 5명을 자립생활주택이나 가정으로 돌려보낸다는 계획도 쇄신안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거주인 인권침해에 따른 후속 조치일 뿐 마리스타의 집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탈시설 계획은 아니며, 지적장애인 시설을 중증와상장애인 시설로 '업종변경'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채로운 지역사회 생활과 단조로운 시설 수용 생활을 비교한 그림.

자립생활 말하고 수용 유지하는 시설, 과연 '자립생활 동반자'인가?
 

개개의 장애인거주시설은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자립생활을 천명하고 있으며,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양상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거주인들을 시설의 운영권 테두리 안에 묶어두려는 경향 또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설은 당장 자립 능력이 있는 경증장애인도 그룹홈이나 체험홈에서 살게 했다. 또는 체험홈을 사실상 시설의 부속 기관으로 전락시켰다. 겉으로는 가정화된 생활관을 내세우고 시설 수용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설 측은 공통적으로 자립 능력이 낮다고 평가되는 장애인들을 돌보기 위해 시설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전행동을 하는 발달장애인’, ‘혼자서 밥도 먹지 못하는 장애인’, ‘치료가 필요한 중증 와상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격리된 시설에서 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물론 ㄱ 시설 관계자의 경우 “우리는 여건만 되면 거주인들을 자립시키고 싶다. 책임감을 가지고 자립을 시도하지만 공공 서비스가 부족해 쉽지 않다.”라고 항변했다. 이는 대다수 시설의 공통된 입장이며, 실제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가 장애인 지원을 명목으로 시설에는 이미 많은 예산을 투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서울시의 경우 2016년 기준 시설 지원 예산으로 968억 9855만 6000원을 편성했다. 거주인 1인당 3426만 3987원을 지원한 셈으로, 서울시가 연간 15명에게 지원하는 탈시설 정착금 1200만 원보다도 3배 가까이 많다. 이 많은 예산은 시설에서 탈시설 거주인에게 직접 이전되기보다, 시설 종사자 인건비를 주고 체험홈과 그룹홈, 소규모 시설을 늘리는데 사용됐다. 국가 지원이 부족하다는 시설 측의 입장은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전면적인 탈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시설의 자립생활 방안은 어느 정도는 거주인들에게 지역사회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주거를 제공하고, 거주인 자기 결정권을 향상시켜 궁극적으로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껏 확인된 시설의 자립생활 방안은 오히려 소규모의 '반영구 시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