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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반려의 권리, 홀로 내버려지지 않을 기본권 본문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에서 제안했으나, 계속 논의를 진행하지는 못했던 반려의 권리에 대해 오늘 한겨레에 칼럼을 썼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9485.html
[세상 읽기] 반려의 권리, 홀로 내버려지지 않을 기본권 / 권명아
등록 :2017-01-19 18:33수정 :2017-01-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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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반려란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하는 짝이나 동무”를 뜻한다. 반려 관계는 사물이나 동물, 인간을 막론하고 함께하는 관계가 만드는 애착, 친밀함, 신뢰, 존재의 안정감 등의 의미를 함축한다. 함께함으로써 존재의 안정감을 확보하고 존재의 안정감이 사회와 공동체 등의 관계 구성 원리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반려라는 오래된 말의 함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 구성 원리를 발명하자. 인간은 누구나 홀로 외롭게 내버려지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즉 인간은 누구나 반려 관계 속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반려 관계는 사적 친밀성, 가족, 사회적 안전망, 복지, 고용 안정 등 모든 면에 근간이 된다. 인권은 근대적 개인을 단위로, 복지는 가족을 단위로 구축된 이념이다. 반면 반려의 권리란 인간의 근원적 취약성과 상호의존의 불가피성을 근간으로 한다.
촛불 혁명 이후, 우리는 어떤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고 있나? 대권 주자의 하루와 지지율 변화 뉴스, 기존의 몇몇 정책 기조에 대한 찬반 입장의 나열 속에 새로운 ‘사회’는 보이지 않는다. 노인 복지, 돌봄 정책, 고용 안정은 박근혜 체제에서 모두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폐기되었다. 아이 셋을 낳는 것이 과로사로 귀결되는 이런 시스템에서 돌봄은 완전히 사적인 영역, 가족에게 떠넘겨졌고 그 결과 가족은 파괴되었다. 국가는 복지의 이름으로 굴욕을 주고, 돌봄은 자본에 맡겨졌다. 동성 결혼의 권리는 이른바 진보적인 정치집단에서도 부정되었다. 이주 아동의 권리 보장에 대한 논의는 ‘한국인’ 정치인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진보 진영에서도 반려의 권리에 관한 논의가 노동, 젠더, 세대, 인종적으로 분리된 쟁점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진보적인 정치 집단조차 노인 복지와 고용 안정을 세대 정책으로 환원해서 접근할 뿐이어서 하나를 강조하면 다른 하나가 퇴색되는 것처럼 여긴다. 돌봄 정책 역시 여성 정책으로 한정되어 성별, 세대별 표심 계산을 위해 저울질된다. 동성 결혼 이슈는 ‘특수한’ 분야 정도로 여기고 이주 아동이 부모와 함께 살고 교육받을 권리를 보호하는 건 ‘한국인 가정’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져 증오의 대상이 된다.
함께하는 관계와 여기서 비롯되는 존재의 안정감을 가질 권리, 반려의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반려의 권리가 사회, 공동체, 경제 등 모든 면에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누구도 홀로 내버려지지 않을 기본권, 반려의 권리가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 부양가족이 없어서 길바닥이나 수용시설에서 죽지 않고, 내일 나의 삶이 어찌 처분될지 매일 불안하지 않아도 되는 삶, 짝을 만나 함께 살고, 아이를 낳으면 해고될까 불안하지 않은 삶, 그런 무수한 삶의 권리 말이다. 반려의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식되어야 ‘취약함’이 동정과 시혜와 불행의 조건이 되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다. 취약함에 따른 의존은 ‘특별한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조건이다. 인간은 저마다 의존할 권리가 있고, 사회와 국가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간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광장에 모인 경험은 저마다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외로운 삶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외롭지 않기 위해 광장에 나가고, 광장에 있는 한 누구도 외롭지 않아야 한다. 광장에서 우리는 잠시 반려의 권리, 그 작지만, 혁명적인 경험을 한 것이다. 그 혁명의 시간을 계속 이어가야 할 때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9485.html#csidxb8fcd75ee262b2db726e97c4e372b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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