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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은 어떻게 '마음'의 문제가 되었을까 본문
학살은 어떻게 '마음'의 문제가 되었을까
*글쓰기에 대한 태도 정리
페미니스트 /연구자에게 연구와 활동은 분리가 어렵다. 그러나 같은 것도 아니다. 페미니스트 연구자라면 누구나 내 연구나 글이 현실의 페미니즘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서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어려운 건 '어떻게'이다. 연구자의 시각에는 한계도 의미도 있다. 해서 여기 쓰는 글들이 페미니즘과 관련한 실시간 이슈 흐름이나 담론 흐름을 꼭 비판하거나 문제시하려는 건 아닌데, 때때로 그렇게 읽히기도 한다. 의미있는 부대낌이 되면 좋겠지만 속만 쓰린 경우도 많다. '의도'는 그런 게 아닌데, 담론의 효과란 의도로만 환원할 수 없으니, 그런 전제를 드리고 말을 이어가고 싶다.
**학살 정치와 페미니즘 백래쉬의 역사적 형식: 인민재판과 홍위병
보궐선거 이후 페미니즘 백래시와 '젠더 갈등' 프레임에 대해 계속 글과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파시즘 어휘가 여러 형태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기회 될 때마다 지루해도 좀 정리를 해두려 한다.
반페미니즘 차별선동 담론은 여러 담론소로 이뤄진 집성체(담론 코르푸스)이다. 예를 들어 미투운동을 공격하는 담론 중 "인민 재판", "검열" 과 같은 어휘가 자주 등장.(이에 대해서는 블로그에 정리해둠)
"인민재판"은 기존 냉전 보수 집단이 사용해온 말이다. 역사적 원천은 "페미니스트는 홍위병이다" 라고 했던 이문열을 통해 가장 널리 확산되었다. <선택>에 대한 당시 '독자들'의 비판을 중국 홍위병들의 인민재판과 검열이라고 주장해서, 90년대 부상하던 페미니즘에 공포심을 갖고 있던 많은 남성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최근에까지도 남성 진보 논객들에 의해 애용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를 홍위병으로, 페미니즘의 비판적 실천을 인민 재판으로 환원하는 담론은 그러니까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형성/재생산되는 증오정치의 구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냉전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등장하는 정치세력에 대해서 변형되어 작동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원천은 냉전 보수 세력이지만, 이미 자칭 진보 세력에게도 널리 활용된다.
**폭력의 임의성: 증오정치
이렇게 페미니즘을 인민재판이나 홍위병으로 표상해서 '빨갱이'와 마찬가지로 비국민화하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논점을 내포한다.
조금 시간을 아끼기 위해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 여성들이 복장과 외모로 공격 대상이 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즉 여기에 어떤 논리적 근거나 추론 가능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숏컷'이 페미니스트 인증으로 동일화된 것은 이른바 반페미니즘 담론 내에서 '메갈 표상'의 형성과 관련된다. 특히 에타를 비롯한 커뮤니티에서 숏컷과 노브라가 페미니스트 인증의 대표 표상으로 자리잡은 건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과도 관련이 깊다.
그러나 다른 선례가 필요없이 셜리는 긴 생머리에 찬란한 미모를 감출 수 없었어도 공격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서 풍기문란 연구를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건 이 시스템에는 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제시기 검열 연구와 관련해서 이런 문제제기를 계속해왔다, 즉 식민통치가 파시즘화되어 가는 가장 중요한 징후는 폭력이 무차별화되고, 초법적인 것이 법제화되는 방식이 임의적이며, 비국민의 범위 역시 무한히 확대된다는 데 있다. 후대의 연구자는 이를 '연구'로 보여주기 위해 일정한 체계나 원리를 부여하려는 욕망과 현실적 필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존재하지 않는 검열 원리나, 통제 체계(통제나 검열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이런 무원리성이 파시즘 통제의 특성이라는 뜻)를 사후적으로 구성하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담론화가 불가능한 게 근대적인 연구 방법의 한계이다.
즉, 여성은 숏컷이나 노브라여서 공격받는 게 아니라, 그 어떤 근거로도 공격과 학살의 '이유'가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공격과 학살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게 증오정치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인민재판'이나 '홍위병'이라고 전도하는 논리가 반페미니즘인것은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처한 가장 지배적인 폭력-폭력의 임의성과 무차별성-을 여성과 페미니즘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되돌려놓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게 바로 자업자득론과 역차별론이다.)
여기서 또한가지 중요한 건, 바로 이런 폭력의 임의성이란, 아무 이유없이도 학살 대상이 될 수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파시즘과 관련한 그 유명한 문구를 패러다하자면, 지금 여성들이 공격당할 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임하면 나중에는 당신 차례가 된다는 뜻.
***학살은 어떻게 마음의 문제가 되었나.
그래서 여성들이 외모나 복장으로 공격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건, <단지, 표현의 자유나 몸에 대한 자기 권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물론 이게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이조차 이해를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한국사회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여성들이 별 것 아닌 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과민하게 보이는 이런 일들이, 왜 여성들에게는 생사를 건 문제로 다가오는가. 그건 이런 공격이 학살의 예비단계이자, 현재의 상황에서 '용인가능한 형태'로 표명되는 학살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경향적으로 존재하는 파시즘의 증오정치는 특정 시점에서 용인 가능한 형태로 분출한다. 그래서 보궐선거 이후 정치권의 백래시는 이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준 것으로 페미니즘 백래시를 이끈 정치권 역시 이런 학살 정치에 책임 주체이다.)
특히 학살과 성차별-외모를 근거로 한 낙인찍기 선동의 역사를 보려면 한국에서 파시즘/풍속통제/생활지도의 역사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목소리로 생활지도에 저항해온 /학생인권운동 주체인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더 많은 마이크가 주어지면 좋겠다. )
**학살과 교화: 도덕적 우위와 가르침의 질서
외모나 복장을 근거로 한 낙인찍기 역사는 파시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태인에게 노란별을 붙인 건 전형적인 라벨링(낙인찍기)이다. 낙인찍기-배제-분리-집단공격-최종해결의 과정이 '현재 용인 가능한 형태로 부상하는 것'이다.
비국민화나 비인간화의 이런 과정은 집단마다 다르게 작동했는데, 특히 일본과 조선에서는 독일, 이탈리아와는 또다른 인종없는 인종주의의 형태로 일찍부터 자리잡는다. 풍기문란 통제가 "여성-비엘리트남성-청소년-정신병자-장애인-부랑아-불량집단-동성애자-"(당대의 분류목록을 인용)라는 선을 따라서 계속 '부적절한 집단'의 목록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자리잡은 이유다. (죽음의 정치란, 죽음을 생산하는 정치라는 뜻이다.)
이런 통제는 끝없이 주민들을 향해 "너의 시민/국민으로서의 적절성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는 심문의 정치에 기반한다. 그래서 파시즘은 이미 구성된 이념을 주민들이 수동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적절성의 이념과 표상을 끊없이 생산해서 입증하는 수행성"에 입각해 있다. 파시즘에서 이른바 '대중의 자발성'이나 '수행성'이 핵심인 이유다. 즉 대중의 자발성이 파시즘이라는 뜻이 아니라, 파시즘 정치는 '대중에게 자신이 살거나 죽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도록 강제하는" 정치라는 뜻이다. (파시즘 정치에서 자발성과 억압적 통제/강제의 분리불가능성)
그래서 이런 파시즘 체제에서 주민들은 끝없는 심문 속에 삶과 죽음을 내맡기고 산다. 꿈에서도 비국민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른바 세뇌나 꿈조차 검열하려는 파시즘의 강박적인 통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체제에서 언제나 '부적절한 존재'로 간주될 상시적 위협 속에 있는 존재들은 꿈에서조차 자신 스스로를 검열하고 심문하는 삶을 살게 된다. 증오정치가 주민들의 '마음의 문제'가 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심문의 정치는 국가 뿐 아니라 무수한 '교화조직'을 통해 이뤄졌다. 파시즘이 보육기 국가라고 했던 후지타쇼오조.
교육 시스템이 이런 교화의 전형이지만, 교육 시스템을 넘어서, 파시즘 체제는 학살이 '교화'로 전도된다. 파시즘 정치가 무수한 교화기구를 동반하는 이유다.
페미니즘에 대해 사실상 반페미니즘적 발언과 진술이 '가르침'의 형태로 제시되는 이유다. 또 이 가르침(교화) 주체는 스스로 대상을 교육하는 교육적 동기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페미니즘이 대화가 불가능한 '도덕적 우위'를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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