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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라디오 팝, 신주쿠 일본어, 드라마 중국어: AI는 외국어 교육을 대체할까 본문
외국어 공부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꽤나 재수없게 느껴질 수 있어서, 항상 부연 설명을 한다.
라디오 팝 영어
아주 어릴적부터 외국어를 좋아했고 잘했는데, 그건 공부를 잘한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어릴적부터 모든 종류의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는데 외국어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때 진로 선택지가 체대와 영문과였다는 ㅎㅎ체육 선생님이 체대 진학을 끈질기게 권하셔서 고1 때 담임 선생님과 대판 싸움이 나기도 했다.)조기유학도 학원도 없던 시절이었고 영어는 라디오를 듣고 팝 음악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었다. 친척 언니들이 많아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웠고 방학 마다 몰려가서 놀던 친척집에 팝송 책과 기타가 있었다. 그렇게 영어를 시작해서 아주 좋아하고 잘하게 되었는데(어린 시절 기준), 중학교 친구가 "명아는 팝송 많이 들어서 영어 잘한다"면서 엄마한테 전축 사달라고 졸라서, 전축 구경오라고 해서 놀러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주쿠 위클리의 눈물과 일본어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건 연구자료 때문이기도 했고, 정규직 취업 전쟁 당시 떨어질 때마다 한국에서는 울고 싶지 않아서(^^) 없는 돈을 땡빚내어 신주쿠 위클리에 처박혀서 딱 1주일, 낮에는 와세다에서 자료 복사하고, 밤에는 위클리에서 좀, 울고 그랬던 일을 오래 반복했다. "내가 너희들한테 지는가 봐라"라는 심정(역시 스포콘: 운동선수 곤조)으로 눈물을 훔치고 자료 복사하고 돌아와서 논문 쓰고 했었다. 독해 중심으로 공부를 해서 회화는 거의 못했는데, 위클리에 묵으며 "오늘의 일본어"를 외우고 다음날 꼭 써보고 하면서 회화를 익혔다. 내 회화의 절반은 신주쿠 위클리의 눈물로 차있다.(ㅋㅋ)
드라마 중국어
일본어 공부할 때 한국에서도 집에서는 한국어로 된 방송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일본어 방송만 보면서 공부했고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 중국어 공부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일어 공부만큼 집중할 여력이 안되니 속도가 더디다.
사실 서두가 길어져 버렸는데.
그런저런 이유로, 외국어 공부를 놓지 않는다. 비정규직 시절부터의 습관으로 생활 계획표를 엄청 꼼꼼하게 세워서 지킨다.
이건 성실함과는 다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나만의 방안이었다. 취업이 되지 않고 "너는 한국에서는 취업 못한다"는 말을 계속 들었기 때문에 당장 미래를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적들이 나한테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불안과 자기 파괴에서 벗어날 방도가 필요했고, 그게 매일매일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최인훈 선생 책에 나오는 구절인데
"매일매일 열심히 사는 사람이 가장 비관주의자"
내일이 없기에, 그저 오늘 열심히 사는거. 그게 내가 택한 방법이었다.
매일 <자료공부>, <외국어 공부>, <이론 공부> 시간을 정확하게 지정해두고 매일 정해진 시간을 나눠서 반복했다.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기에.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하는데. 사실 드라마 보기는 <외국어 공부>를 알리바이로 은근슬쩍 끼워넣은 항목이다.
전화 영어
학교에 전화 영어 할인 프로그램이 있어서 오래 수강중이다. 공자 아카데미도 학교에 있어서 중국어 공부의 계기가 되었으니 나의 외국어 공부는 정규직 직장의 혜택을 많이 보게 된 셈이다. 아침 6시에 수업을 듣는 데 필리핀은 5시여서 때로 전화 영어 튜터의 피곤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이 튜터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편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 AI 튜터가 진행하는 전화 영어 회사가 생겼고, 이효리가 광고를 해서 엄청 유명해졌다. 한번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계속 광고가 들어와서 차단이 안될 정도이고 온갖 종류의 할인 폭탄을 날린다.
이러다가 전화 영어 튜터들 다 AI에 일자리를 잃겠구나 싶기도 한데. 시장의 추세를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화 영어 만족도가 아주 높은 편이다. 10분 수업이지만 교재와 강의 노하우가 잘 구성되어 있고, 피곤하거나 때로는 아픈 튜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피드백 받는 게 도움이 된다.
AI 영어는 하지 않을 예정인데, 내 공부가 AI 훈련을 위한 데이터로 빨려 먹히는 일이 될 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AI 튜터가 현재의 전화 영어 튜터의 전문성을 따라잡기는 여러모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학문적 논의를 다 떠나서 외국어 학습자로서는 "싸다"는 것말고는 의미가 없다.
온라인 인도네시아어
연초부터 온라인으로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고 있다. 7월 AAS 인도네시아 준비를 겸해서이기도 하고, 항상 배우고 싶었던 동남아시아 지역 언어를 늦게라도 배우기 위해서다. 동영상 외국어 강좌 플랫폼에서 초급을 시작했는데. 사실 동영상 강의를 불신하는 편이고, 수강이 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동영상 강좌 들으면서 강사님께 많이 배웠다.!!
학생들의 수강 패턴(여기쯤에서 지루해 하거나, 단어 암기 안하려고 하거나, 빨리 돌리기로 듣거나 등)을 파악해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공부 안하려는 수강생을(항상 느끼지만 왜 수업 들으면서 어떻게든 공부 안하려 하는지, 그게 모든 '학생'의 문제다^^) 요리조리 요리해서 의욕과 동기를 부여하는 강의를 보고, "쓰부, 많이 배웠습니다!"를 외쳤다.
온라인 강사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번역기로 번역한 게 진짜 좋다고 생각하세요?
탐라에 이전부터 인공지능 번역기 성능이 좋다는 글이 많은데, 진짜 궁금했다. 영어, 일어 번역 세미나를 오래 하고 있고, 번역기를 많이들 사용하지만, 그건 정말 초벌용이나 급할 때 쓰는 용도이고, 번역기 돌린 발제문은 다들 알아채린다. 일단 번역기 특유의 "깨진 문장들"이 많고, 전체적으로 언어적 균형, 표현의 미세함, 뉘앙스, 의미 맥락, 개념 이해 등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공지능 번역기가 "성능이 좋다" 혹은 "번역을 잘한다"고 판단하는 이들은 대체로 한국어 감각이나 언어 감각 자체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능력을 넘어서 기대 감각이나 기대 지평이라 하겠다. 번역기의 문장 정도를 좋은 문장이라고 보는 언어에 대한 기대 지평 말이다.
나아가 이런 깨진 언어는 어떤 면에서는 익숙하기도 한데, 번역기가 아니어도 무수한 번역서 중에서 많이 발견되기도 하고, 학생들이 쓴 "복붙 보고서"에서도 발견된다.
플라이 플라이-왜 직역인가
나름 프랑스 문학 전공자이기도 한데. 대학 다닐 때 외국 문학 전공자들 사이에 악명 높은 번역이 있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는데 번역자 실명이 돌 정도였다. "나비야 나비야"를 "플라이 플라이"라고 번역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인데.
이건 이른바 한국어의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직역 방식을 풍자한 뒷담화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실 인공지능 번역에 대한 맹신은 한편으로는 복붙 보고서 쓰기 같은 언어와 언어 생산에 대한 무감각이나 낮은 기대 지평과 관련이 깊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영어, 유럽어에 대한 맹신(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식민주의적인 기술 숭배)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AI 외국어 서비스, 언어 생산에 대한 기대 지평을 한없이 낮춰버린 고등 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반복
그러니까 AI 외국어 서비스가 대체하고 있는 건 역설적이지만, 기존의 식민주의적 외국어 교육이고 AI 외국어 서비스가 반복하고 있는 건 복사해서 붙여넣기 식의 글쓰기에 담겨 있는 글쓰기와 언어 생산에 대한 형편없는 기대 지평과 이를 반복하게 만드는 고등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다. 이른바 인문학을 비실용 학문으로 치부하면서 고등교육에서 고도의 언어 수행성에 대한 교육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이게 "요즘 아이들 문해력"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교육 시스템을 만든 정책 수행자들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 건 AI 교육 서비스라기보다,언어 생산에 대한 기대지평을 한없이 낮춰버린 고등 교육 시스템을 강요하고 정당화하는 고등교육 정책이라고, 이 연사 힘주어 주장해봅니다!!!!!!(농담조로 마무리해보았습니다.)
(사진 이미지 넣으려고 최선을 다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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