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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쩍벌' 비판과 반페미니즘 차별선동의 흐름들 본문
며칠 전부터 탐라에 무성한.
홍혜은 씨는 잘 모르지만 관련해서 이 칼럼 공격하는 논자들의 연쇄를 보면서 사실 무시하는 중이었음.
'쩍벌'이나 개저씨 등을 비판 담론으로 삼는 방식에는 이전부터 거리를 두는 편임.
근데 홍혜은 씨 칼럼에 대한 비판은 표면상 '몸을 공격대상으로 삼았다'는 논거를 대지만, 실은 페미니즘 담론, 특히 젊은 세대의 페미니즘 담론에 대한 차별적 공격이기도 하다고 보임.
윤석렬 현상이 블랙코미디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자칭 '진보 비판'을 주장하는 논자들의 정치적 지향성과 논리적 딜레마를 가늠하게 하는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봄. 특히 여러 형태로 '페미니즘'을 운운하는 어떤 여성 논자들의 반페미니즘 공격의 본모습을 잘 분출하게 해주는 점에서도.
천정환 선생님 칼럼을 새삼 표적이 되게 하려는 건 아닙니다.^^;; 두 칼럼에 대한 반응이 흥미로워서 좀 비교해서 생각해봅니다.
역시 탐라의 난리난리랑 좀 거리를 두려고, 친구공개로만 올려둠. 역시 블로그에는 공개해둠.
천정환 선생님 칼럼이 하루 전에 나왔고, 윤석렬의 '쩍벌', '개저씨'적 몸가짐을 쓰레기, 폭탄주, 룸살롬, 스폰서 등의 이들 집단의 비문화적 문화양태의 소산이라고 굉장히 적나라하게 비판하셨고, 분량도 훨씬 많은 분량으로 표현되고 있음.
흥미로운 건 홍혜은 씨 칼럼에서 '쩍벌'에 대한 논의는 분량도 사실 천정환 선생님 글 절반 정도이고 표현의 수위도 어떤 점에서는 우회적임.
그런데 댓글도 그렇고, 이 탐라에서 표적이 되고, 공격당하고, 사냥감이 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홍혜은 씨 글 사냥하는 논자들도 천정환 선생님 글은 언급도 안하는것도 꽤 흥미진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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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은 씨 글이 <사이비 페미니스트> 글이라는 정치인 글에 달린 고백들도 참 흥미롭다. 이 일련의 사태는 사실 "쩍벌"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페미니스트, 그것도 교수도 아니고 '나이도 어리고', 자기들과 유유상종이 될만한 특별한 스펙도 없다고 간주되는 여성 페미니스트 논자에 대한 집단적 히스테리와 공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사태를 보면서, 이런 공격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몸에 대한 언급, 나이 차이와 몸 상태에 대한 자괴감과 이로 인한 세대적 불편함을 표명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보인다. 이걸 모두 차별선동이라고 뭉뚱그리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공격에 앞장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명 그렇게 말할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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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자 경향신문, 천정환 선생님 칼럼, <블랙코미디로서 윤석렬 현상>
윤석열과 최재형의 행동양식, 언어, 견해를 보면 그들이 사법권과 고시 전문가인지 몰라도, 2021년 한국사회의 상식과 민주적 시민성(시빌리테)에는 미달해 보인다. ‘쩍벌’로 상징되는 태도와 120시간 노동, 후쿠시마, 페미니즘, 부정식품 등에 관한 일련의 망언은 그 인식이 단지 ‘보수’가 아니라 무지와 쓰레기 정보가 뒤엉킨 공백과 ‘이해 이전’ 상태임을 짐작하게 한다. 정리도 학습도 안 된 무관심과 무지, 자투리 우파 이념에 착종된 문장이 계통도 출전도 없는 ‘썰’과 반말조로 발화된다. 그런 몸가짐과 교양을 가진 중장년 남성을 요새 젊은이들은 ‘K(개)저씨’라 부른다 한다. 이젠 지하철 ‘오륙남’ 중에서도 ‘쩍벌’은 거의 없어졌다.
일련의 사례는 지식문화 연구자인 필자에게 대단히 흥미로워 보인다. 인지심리학, 사회학, 교양학 연구자들에게도 묻고 싶어진다. 이데올로기와 교양의 상관관계, 상명하복·폭탄주·룸살롱·스폰서 같은 정치검찰 특유의 ‘서브컬처’(?)가 정치인식과 지적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말이다. 소위 ‘최고 명문대’ 학벌과 무시무시한 법조 경력, 가족들의 화려한 학위와 고급문화 종사는 왜 교양에 작용하지 못할까? 어떤 조건에서 문화지체와 시대착오가 ‘보수’로 의미화되는가? 교수, 의사, 과학자 등 폐쇄적 남성사회와 전문가주의 권력은 앎과 시민됨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 사례는 가히 나 같은 중년 남성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만하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column/article/202108112103005...
8월 2일자, 경향신문, 홍혜은 님 칼럼, <당위와 삶이 괴리된 빈말>
언론 카메라 앞에서도 쩍 벌어진 그의 다리에서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혹자는 법조계 출신 중년 남성의 오만한 태도 문제로 보기도 하지만, 내 주변의 체육인, 의료인들은 허벅지 안쪽 내전근의 실종과 지나친 복부 비만이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고 본다. 몸을 미와 쓸모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가부장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그럼에도 이 몸은 유죄다. 왜냐하면 그는 ‘부정식품’밖에 먹을 수 없는 계급도 아니고, 자기돌봄으로서의 생활체육에 쓸 돈과 시간을 ‘먹고사니즘’에 의해 박탈당한 저임금 노동자, 자영업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자유를 오해하고 낭비하며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권력을 앞장세워 살아간 결과 그 자체다.
https://m.khan.co.kr/.../column/article/2021081203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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