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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일이랑 무슨 상관인지를 기억하는 한 사람"

alice11 2021. 8. 23. 17:13

 

"이게 그 일이랑 무슨 상관이야?"

 

대학 및 연구 네트워크와 관련한 미투 운동 연대 활동을 해오면서, 나는 그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나 역시 연대 활동을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건 다름 아니라, '그 이후'를 지켜보는 일.

 

모두를 알 수는 당연히 없고, 내가 참여했던 사례를 나름으로 추적 조사한다. 고발, 토론회, 해결 과정에 '연대 단위'로 참여했던 그 동네 연구자들의 이후를 살피는 일.

 

이 일은 그 동네에서 이후에 누가 선수로 뽑혀가는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사건'이 종료된 후 연대 단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 동네 연구자 풀에서 '선수'로 뽑히는 걸 본 적이 없다. 선수는 커녕 안부나 소식도 팔로우하기 어렵다. 타임라인은 사라졌고, 몇다리 건너서야 겨우 들려오는 건, 쉬고 있다거나, 공부를 그만두었다거나, 뭐하는 지 모른다는 그런 이야기들.

 

조금 다르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어떤 남성 학자분은 무슨 정치철학 연구회에 성폭력 가해자를 받아들이는데 항의하고 비판하다가 결국 탈퇴했다. 그런데 이걸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자기 전공 연구 네트워크와 절연하는 건, 강의자리, 일자리, 연구자리, 그 외 무수한 자리를 박탈당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온라인에서만 어떻게 사시나 가끔 들여다보지만, 이전에 한다리 너머 연결되었던 모임도 미투 운동 연대 과정을 거치면서 질려서 절연한 터라, 현실의 삶의 풍경을 알기도 어렵다.

 

가끔 그 분이 본인이 페미니즘에 대해 하는 조언과 비판을 페미니스트들이 듣지도 않고, 더 나아가 반페미니즘적인 남자 학자와 동급으로 매도한다고 분노하시는 글을 쓰신 걸 본다. 어떤 심정인지 사실 모르지 않는다. 근데 자꾸 화를 내셔서 아는 체를 못한다.^^;;

 

아는 체를 못하지만, 왜 그렇게 자꾸 화가 나고, 또 그래서 고립되는 지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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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야기. 미투 운동 연대 단위로 활동한 연구자들중 강의 자리가 없는 사람, 일 자리 없는 사람, 마땅히 뭔가 할 게 없어진 사람들을 많이 본다.

 

강의나 뭔 자리가 없는 데 대해 본인은 그 원인에 대해 무수한 심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대학 구조를 아는 사람들, 그 구조와 싸워본 사람들도 그 원인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항상 궁금한 건, 그리고 항상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말간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게 그 일이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묻는 학계 사람들이다.

 

네가 강의 없는 거, 한 자리 못하는 거, 다 네가 공부 안하고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미투 운동 연대활동 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누군가 몇년간 연대 활동하고 소진되고, 환멸에 나가떨어지고, 칩거하고 손놓고 있는 동안

아무 상관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 다니고 잘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일자리, 강의 자리, 선수 자리, 다 차고 앉아서

 

"이게 그 일이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묻는다.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전쟁 나고, 옆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그저 입시 공부하느라 평화로운 날을 보냈던 1940년대 전문학교 학생의 내면 역시 그러한 게 아니었겠나.

 

그래서, 이게 그 일이랑 무슨 상관인지를 기억하는 건 중요하다.

 

적어도 그런 한 사람이 되는 일

그게 내가 아직 미투 운동 연대 활동을 현재형으로 하고 있는 이유이자 내 나름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