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
현재 과격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무상급식 폐지 선언은 그 본질에 있어서 정치인들의 유턴 정치의 무책임한 결과이다. 무상급식 폐지 논란이 왜 경남에서 선정적일 정도로 선동되는지를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남에서는 무상급식을 ‘경남의 자부심’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무상급식 논란에서 막상 경남 지역은 사라져버렸다. 홍준표 지사는 이 논란 덕택에 대선 주자로서 한자릿수의 지지율을 얻는 ‘결실’을 얻었다고 한다. 도지사가 ‘아이들 밥그릇’으로 유턴 정치에 열심인 사이, 도민들의 자존심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홍준표 도지사가 내동댕이친 ‘아이들 밥그릇’은 실은 김두관 전 도지사의 ‘작품’이기도 했다. 야권 불모지 경남에서 53.5%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김두관 전 도지사가 ‘대권’을 위해 유턴해버렸고 경남도민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홍준표 도지사의 당선은 그런 점에서 김두관 전 도지사의 유턴 정치에 대한 도민들의 강력한 심판 의지의 결과였다. 유턴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당선된 도지사가 다시 유턴 정치를 위해 경남도민의 ‘밥그릇’을 내동댕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왜 경남도민들은 일어나서 분노하지 않느냐는 질타를 받기도 한다. 결국 보수정당 텃밭인 경남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문제라는 비판도 들린다. 자주 듣는 진단이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하는 이른바 지식인들도 결국 선거 때 말고는 지방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의 지방 비판은 지방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선거 결과만으로 고질적 지역주의 운운하는 사람들이나, 지방을 표밭으로만 보는 정치인들은, 지방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가꾸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 도지사들이 차례로 밥상 뒤엎는 모양을 내내 지켜보아야 했던 경남도민들은 분노하기보다 냉랭하다. 이 냉랭함이 정치 무관심과 같은 것일까? 내동댕이쳐진 밥상으로 더렵혀진 방구석을 치우는 이들은 화를 내기보다, 냉정하게 이를 앙다문 채 뒤치다꺼리를 할 수밖에 없다.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이야말로, 살림을 꾸리는 이들이 맡아야 하는 몫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건 살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떠나면 그만인 ‘유턴족’들과 멀리서 불구경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유턴 정치는 모두 서울 중심주의의 결과이지만, 교수의 유턴이 학벌 사회와 관련된다면 정치인의 유턴은 지역 자치가 불가능한 정치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한 선거는 결국 지방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선거는 근본에서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지방의 맥락에서 선거는 지방을 중앙의 식민지로 만드는 노예화의 도구에 불과하다. 분탕질 뒤끝의 심판도 살림도 결국 지방 사람들의 몫이다. 그 뒤끝이 선거 결과만으로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뒤끝의 매서운 맛을 볼 날이 오리라.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