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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없는' 과학은 살처분을 어떻게 보편화하나: 과학의 인종화와 젠더화> 본문

연결신체이론/젠더어펙트

<'살 없는' 과학은 살처분을 어떻게 보편화하나: 과학의 인종화와 젠더화>

alice11 2023. 4. 27. 10:09
젠더어펙트 연구회 세미나: 신야오 디스어펙티드 읽기, 2023년 4월 26일, 4부를 정리는 글. 권명아
 
<'살 없는' 과학은 살처분을 어떻게 보편화하나: 과학의 인종화와 젠더화>
 
신야오는 디스어펙티드에서 의학, 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이 인종적 젠더적 노예화를 어떻게 보편화하는 지를 해부한다.
미국의 근대 의학 발전 과정은 흑인 여성 노예에 대한 임상실험의 산물이었다. 이 임상실험에서 흑인 여성 노예에게는 마취조차 하지 않았다. 흑인 여성들은 해부대에서 최소한의 존엄도 획득하지 못했다. 흑인 여성들은 그저 살더미로 취급되고 처분되었다.
 
인종이나 젠더와 무관한 '과학적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주장하는('살없는) 과학과 의학은 실은 이러한 인종적 젠더적 살 처분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살처분의 과학은 인종과 젠더는 정체성 문제일 뿐이며 사회를 바꾸는 건 계급 문제라는 담론에서도 반복된다. 이른바 혁명의 과학에는 살이 없다는 식의 논의, 인종차별에 대해 '그건 계급 문제로 봐야지'라고 충고하는 리버럴들.
 
 
<자발성과 동의라는 백인 자유주의의 환상과 노예화:인종은 단지 정체성 정치이며 계급이 본질이라는 백인의 환상>
 
 
4부에서 신야오는 왓킨스 하퍼의 소설 <아이올라 르로이> 소설의 의학을 논하면서, 이 서사가 흑인 여성들의 몸에서 폭력적으로 지식을 추출하면서도 흑인여성 주체를 병리화하고 삭제했던 의학담론을 어떻게 전복시키고 있는지 추적한다.
아이올라는 전문가(직업)으로서 간호사가 흑인 여성들에게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지, 혹은 간호사를 전문성으로 만들려고 했던 흑인 여성들의 노력이 어떤 정치성을 지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전문성으로서의 무감정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가 간호사였고, 환자였던 노예주인 유진과 결혼하게 됨. 마리의 경우 남편(결혼 관계라는 자발적 계약 혹은 ‘낭만적 사랑’)은 간호라는 강제 노동과 구별되지 않는다.
 
결혼을 둘러싼 자발성, 낭만적 사랑, 노예 상태, 전문가성에 대한 인정과 불인정에서 인종이 작동하는 방식.
백인 여성 의사들은 의사로서 전문성이 ‘낭만적 사랑’으로 환원되면서 부정되었다면
 
흑인 여성 간호사들은 전문성, 감정 노동이 강제 노동으로 환원되어 부정됨. 노예화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논쟁에서 결혼 계약과 사회 계약의 관계에 대해 캐럴 페이트먼의 논의는 유명.
결혼 계약을 통해 여성은 남성 가부장을 매개로 시민에 포함된다는 의미에서 시민적 노예화라고 규정.
사회계약의 젠더화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주체화 양식에서 노예화 개념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념을 비판해온 페미니즘 방법론.
 
신야오와 인종차별주의 비판 이론에서 흑인의 노예상태가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논의는 이런 점에서 노예화와 시민적 주체화에 대한 논쟁, 페미니즘적 전환과도 또다른 논점.
 
백인 여성이 결혼을 통해 시민적 노예상태라는 포함인 배제상태에 도달한다면 흑인 여성은 결혼을 통해서 강제 노동=노예상태를 지속하게 됨. 결혼이 노예주와 노예 상태의 연장이자 반복.
 
전문가성을 둘러싼 인정의 정치에서도 전문성이 낭만적 사랑으로 전도(백인 여성 의사)되는 방식과 강제노동과 전문성 사이에 구별이 사라지는(아이올라의 엄마 마리) 경우, 아이올라의 경우 전문성에 대한 인정투쟁은 단지 계급적(흑인 부르주아 여성)이지 않고 인종적이자 젠더적이라는 의미.
 
 
<유색인종 해방운동은 정체성에 매몰되어 있나?>
 
백인의 개인주의와 흑인의 집단주의, 흑인해방운동의 집단성, 혹은 공동체성이 개인을 억압해서 여성을 억압한다는 식의 언명은 다양한 유색인종 운동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자이니치 운동에 대한 한국의 리버럴의 태도도 전형적.
 
신야오는 개인주의가 백인 감상주의의 산물임을 비판하면서 가족-공동체성, 혹은 모녀 관계의 역학이 인종공동체의 가부장적 집단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인종차별의 역사에 대한 대안적 관계성의 거점이며, 가족의 공동체성과 역사에 대한 애착 관계가 집단주의와는 다른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대안 정동의 구조로 해석될 필요를 주장한다고 보인다.
 
세미나는 계속됩니다. 이제 5부가 남았고 이후에는 <gender and affect>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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