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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선동과 페미니즘 인증샷의 정치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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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선동과 페미니즘 인증샷의 정치학

alice11 2018. 5. 25. 09:19

'밤새 안녕'이란 말이 실감나는 시절입니다.

북미회담 취소 사태로 저도 밤새 속보를 찾아보며 어수선한 밤을 지새웠습니다.

계속해나간다는 것, 버티고 대결해가는 일의 어려움과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페미니스트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버티며 오늘도 싸우고 버티며 조금씩, 엄청난 변화를 만드는 이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최근 여러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관련한 인터넷 여러 사례를 조사하면서 반페미니즘 증오선동의 공격성, 분노에도 심각성을 느꼈지만

그 엄청난 증오 앞에서 의연하게, 실명으로 대응하고 비판하고 싸우는 무수한 존재들에 경의로움을 느꼈습니다.

백래쉬나 증오에 초점을 두기보다,

이에 맞서 싸우는 그녀들을 기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페미니즘 내에서도 무수한 격동과 갈등이 존재했고 존재하지만

이 다름과 차이가 만드는 에너지와 혁명적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무시무시한 증오선동과 맞서 싸우는 무수한 그녀들은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싸우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미니즘 증오선동이 기존 권위에 의존하고 대나무숲에서도 서울대 대나무숲의 반페미니즘 증오선동 담론을 인용하고 무한 확산하는 방식과 비교해도

기존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의연하게 그녀들 나름의 담론을 생산하고 맞서 싸우는 방식은 매우 중요한 차이라고 보입니다.

"인증샷은 사형감인가?

비현실적인 이 문장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까지 기재되었다.

인증샷, 정확하게는 페미니즘 인증샷은 사형감은 아니어도 한국에서는 해고 사유가 되고, 징계나 근무지 강제 이동의 사유가 되었다"

"여러 페미니스트 주체는 증오 선동에 저항해가면서 ‘단순한 소비’에 그칠 수 있는 인증샷을 생을 건 정치적 행위로 변용하고 발명했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이미 만들어진 세계의 질서와 결별하고 단절하는 해방의 정치이자 삶 정치로 작동하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배지, 티셔츠와 책은 페미니즘 인증샷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콘이다. 인증샷을 통해서 페미니즘 행위자들은 책의 정치성을 새롭게 발명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6141.html


[세상 읽기] 증오 선동과 페미니즘 인증샷의 정치학 / 권명아

등록 :2018-05-24 19:45수정 :2018-05-24 19:49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인증샷은 사형감인가? 비현실적인 이 문장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까지 기재되었다. 인증샷, 정확하게는 페미니즘 인증샷은 사형감은 아니어도 한국에서는 해고 사유가 되고, 징계나 근무지 강제 이동의 사유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많은 ‘조치’가 가해진 것은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미니즘 인증샷이 지금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증오 선동과 혐오세력 때문이다. 페미니즘 인증샷을 ‘박멸’하고자 총력전을 벌인 증오 선동과 이에 저항하는 주체들의 용기에 찬 결단 행위를 통해 페미니즘 인증샷은 정치적 행위로 발명되었다.

페미니즘 인증샷은 등장 초기에는 페미니즘 굿즈를 서로 자랑하고 공유하는 성격이 강했고 페미니즘이 소비자본주의에 매몰되었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애용하는 사례가 되기도 했다. 증오 선동의 사냥감이 되지 않았다면 페미니즘 인증샷은 그저 ‘단순한 소비’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물론 이토록 복잡한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순한 소비라는 규정 자체가 쉽지 않은데, 여성의 소비는 일단 ‘단순한’으로 규정된다. 여성의 소비를 지칭하지 않았다면 ‘단순한 소비’란 생태주의나 반자본주의적 삶의 의미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소비를 지칭할 때 ‘단순한 소비’란 “맹목, 불합리, 추종” 등의 의미로 전도된다.

증오 선동이 맹렬하게 지속되면서 점차 페미니즘 인증샷을 올리는 일은 더는 ‘단순한 소비’가 될 수 없었고, 게릴라전에 버금가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애초에 인증샷을 올리는 일은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페미니즘 인증샷을 올리는 일은 증오에 찬 공격과 살해 협박, 해고, 부당 조치를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한 결단에 찬 행위가 되었다. 여러 페미니스트 주체는 증오 선동에 저항해가면서 ‘단순한 소비’에 그칠 수 있는 인증샷을 생을 건 정치적 행위로 변용하고 발명했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이미 만들어진 세계의 질서와 결별하고 단절하는 해방의 정치이자 삶 정치로 작동하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배지, 티셔츠와 책은 페미니즘 인증샷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콘이다. 인증샷을 통해서 페미니즘 행위자들은 책의 정치성을 새롭게 발명했다. 소통할 현실과 광장을 잃고 무용하고 무해한 오래된 물건으로 골방에 처박혀 있던 책은 페미니즘 인증샷을 통해서 생생한 지금 여기의 현실에 정치적 투쟁의 아이콘 그 자체로 다시 기입되었다. 무게와 질감을 지닌 책의 물질성은 인증샷의 비물질성을 통해 정치적 플랫폼으로 변용되었다. 국가, 출판 협회나 유통 전문가 같은 대문자 주체가 개입하지도 않았는데, 페미니즘 인증샷은 다수의 힘으로 책의 존재 방식, 물질성, 유통과 배분, 할당과 기능에 전혀 새로운 방식을 발명하여 상상하지 못한 미래를 들여왔다.

오늘날 페미니즘 정치는 기존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기존 질서를 여러 방식으로 변용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명하고 있다. 반면 반페미니즘 증오 선동은 기존 권위에 의존하고 기성의 권력을 보존하고자 한다. <시사인> 절독 운동은 기존 매체가 이전과 달리 낯설고 새로운 담론 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거부한 대표적 사례다. 대학 ‘대나무숲’의 반페미니즘 증오 선동이 서울대 대나무숲의 발언 권위를 인용하고 무한 반복하는 것 역시 전형적이다.

반페미니즘 증오 선동은 단지 여성의 권리 부정에 국한되지 않고 기존 권위와 질서를 고수하기 위한 ‘투쟁’을 동반한다.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이유이며 페미니즘이 오늘날 해방의 정치의 최전선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6141.html#csidxac7fb07dc6a3883b596140db1566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