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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밀양+청도를 위한 3분 폭력에 맞서는 모든 이들을 위한 3분 (47)
alicewonderland
10년이 넘는 장기 투쟁.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을 구별하고, 혹은 투쟁을 통해 어떤 주체를 구축해낼 수 있느냐를 가지고, 지식인들은 논쟁을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장기 투쟁의 기록을 보며, 그 시간의 무게에 비할 수 없는 잠시의 시간 동안에도 이 투쟁이란, 그런 개념의 영역을 넘어서는 지점으로 넘어갔다는 생각을 해본다. 분노, 모멸감, 무력감, 혹은 짧은 환희와 서사시적 희열 이 영혼의 파동은몸을 갈갈이 찢어버리고지상의 육신의 물질성을 상실하는 댓가로, 그렇게 그들은 신적인 영역으로 진입해간다. 그리하여, 대속. 신적인 것이 관념이 아닌, 영혼의 파동으로서 그렇게우리 앞에 도래해있구나.
대학을 졸업하고 학습지 교사를 하던 시절,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연대 나와서 자존심도 없냐"는 말이었고, 제일 듣기 싫었던 이야기는 "선생님, 엄마가 학습지 끊으래요"였다. 전자도 후자도, 결국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상징자본과 상징 투쟁으로 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난 7년간 내 글은 항상 "정규직이 된지 올해로"와 "부산에 내려온 지"로 시작하였다. 이 지난한 자기 검열과 강박은 역으로 비정규직 시절 삶의 기이한 '귀환'이었다는 생각을 지금 시점에서는 해본다. 장기투쟁 현장을 다룬 글들을 보며, 쉽게 글을 쓰기도, '마음 아파하기'도 힘든 것은, 비정규직의 삶의 고통이 결국, '죽음의 고비'를 넘는 그런 순간들을 많은 이들에게 '공통감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새삼스러운 확인 때문인지도 ..
주민이 요구하는 지중화 비용보다, 밀양 행정 대집행에 들어간 비용이 더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전 역시 이후 송전탑 건설이 비효율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보도된 바도 있다. 청도 역시 단지 아주 짧은 거리에 지중화만 해도 될 일을 "전례"가 된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즉 이것은 어떤 실제적인 경제적 효과나 실리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싸움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주민들이 보상이나, 경제적 문제가 아닌 "삶의 존엄성"을 건 투쟁을 한다면한전과 정부, 경찰은 "선례"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 '양보는 없다'는 '일벌백계식' 대항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실상, 밀양과 청도 주민과 정부, 한전, 경찰과의 투쟁은 "상징 투쟁"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점에서 그것을 너무나..
밀양, 청도 생각한전의 높은 철조망 앞에, 경찰들의 방패 앞에, 레미콘 트럭 앞에서 맨손으로, 두드리고 두드리는 할매들의 몸짓을 보며저 겹겹의 벽들이야말로지역차별, 지역 착취, 에너지 모순과 원전 문제 등 모든 모순이 마주하고 있는맞서야 하는 그런 맞섬의 최전선이 아닐까.수많은 도시인에게는 공감도 관심 대상도 되지 못하는 저, 깊은 산골 할매들의 외침을 들으며그 맞섬의 지오그라피를 더 깊이 사유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삼평리 이바구", 2014년 8월 8일, (, 만화가 김홍모 작. ) "밀양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은 예전의 삶을 되찾는 것이다. 변한 것은 없다. 그러한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밀양 주민들은 말했다. "법은 당신들의 손에서 놀아나지만, 그 법을 존재하게 하는 정신을 만드는 것은 우리입니다."이들은 싸움의 끝이 무엇인지 안다. 더 이상 도시가 주변부 지역의 자원에 기생하는 전력 공급 체계를 유지해서는 안된다. 도시와 기업은 자가발전을 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전기 소비량에 제어를 걸어야 한다. 발전소를 늘리는 것으로 수요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핵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존하는 방도이며, 이 싸움의 끝이다. 시골 무지랭이라 스스로를 부르던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