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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어펙트연구소/젠더어펙트스쿨

페미니즘을 묻다

alice11 2018. 8. 3. 14:33

'페미니즘을 묻다'

젠더어팩트 스쿨, 가족과 젠더 이데올로기 1회를 잘 마쳤습니다.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솔직하게 살아생전 페미니즘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이처럼 많은 관심을 갖는 날이 올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만든 건 제가 살아온 날들의 결과는 다른 어떤 힘들의 산물이라고도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 빚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도 필요하지요.

제 나름 오래 묻고 답하며 갖게 된 생각은
페미니즘은 바로, 그 질문을 '묻는 것', 묻고 묻는 것 그런 복합적 의미에서, 그런 질문의 방식과 결별하고 새로운 지형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고 할까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근대적 주체성의 필수 구성요소이고, 그 질문은 언제나 정체성 심문을 포함하지요.

그래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심문을 반복하지 않는 것,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 
그렇게 질문의 방법과 질문이 형성되는 문법 자체를 바꾸는 게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이 오래 고민한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자기자신에 대한 질문과 탐닉을 그만두는 것, 그것이 나르시시즘과 '자기'에서 나아가 "서로"를 향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가르쳐 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감사할 뿐.

자신을 너무 믿지 말라는 다짐 혹은 사유도 여기서 얻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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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나, 가족, 국가 등에 대한 페미니즘의 질문과 문제의식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누군가에게는 다정하고 따스한 품 같은 것으로 생각되는 가족주의는 동시에 가족의 죄가 곧 네 죄라는 연좌제와 사회도 국가도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폭력을 다 짊어져야 하는 "유족 주체"를 끝없이 양산하는 원천이죠.

국가주의란 '국가/국민의 중심성' 하에 끝없이 비국민을 생산하고, 비국민으로 위협해서 누구나 쫓아내고 죽여버려도 좋은 사회의 이념적 원천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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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에게 '오빠의 죽음을 묻는' 일은 그래서 바로 나, 가족, 국가에 대한 이런 물음을 이어가는 일이었습니다.

빨갱이(비국민)로 낙인찍히는 일은 뭔가, 빨갱이라며 죽게 내버려두고 야멸차게 내쫓고 문을 닫아걸던 '이웃'은 과연 누구인가?, 빨갱이 가족이라고 벌레처럼 짓밟혀 깜쪽같이 죽임을 당해도 온 인생을 두려움과 원한을 반복하며 살아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관심도 없는 이 사회는 도대체 뭔가.

국민이 아닌 자는 죽여도 되나?
국민이 아닌 자는 내쫓아도 되나? 죽도록 내버려두고,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저만 잘살면 되는 이 '나라'는 도대체 뭔가? 그런 '이웃'은 뭔가?

가족주의/국가주의의 끝이 연좌제, 유족 주체, 비국민 절멸이라면
그런 주체가 아닌 다른 주체가 되는 일은 어디서 시작되나?

바로 이런 주체화에 대해 <클레임claim을 거는 것> 동의하지 않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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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가 도달한 어떤 지점에서 저는 주디스 버틀러의 <안티고네의 주장Claims of Antigone>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버틀러의 안티고네의 주장이 '페미니즘 주체화 이론'으로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이전에 중앙대 강의에서도 논한 바 있는데요. 좀 길어져서. 이 부분은 다음 후기에 전하겠습니다.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페미니즘은 아마도 이 질문을 '묻고'
묻어버리고,
국민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비국민은 죽게 내버려도 되나? 이웃을 사랑하지만, 비국민 혹은 나를 위협하는 <적>은 사랑하지 못하는 그런 이웃이란 <관계>는 무엇일까?

그렇게 나, 이웃, 가족, 친구, 국민, 원수, 적, 비국민이 된다는 게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일이 페미니즘 실천과 이론이 걸어온 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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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그 물음이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젠더 어펙트 스쿨은 계속됩니다.

그렇게 계속해보겠습니다.